한국일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2010-08-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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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시인)

아무리 숲이 우거지고, 그 무성한 나무위로 날개가 찢어지도록 더위를 활짝 벌리고 땡볕이 내려앉아도 시원한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는 뉴욕의 2010년 7월은 유난히 더웠다. 매미가 없는 곳인가? 아니겠지. 날만 더우면 마음에 한 점 여유 없이 에어컨 틀어놓고 사무실이나 방안에 들어앉아 있으니 매미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있다한들 시원하게 울어주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젊은 나무 잎새들의 얼굴들이 더위에 지쳐 늘어지는 이상한 여름, 아무리 더워도 안쪽으로 더위에 허덕이고 밖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늙어가는 노목의 그 굽은 곡선이 직선으로 뻗는 젊은 나무와 어우러져 그래도 여름의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신세대와 구세대를 가르는 사회적 논리는 한여름의 더위보다도 더 습도가 높고 더 덥다. 세대는 상대성이다. 구세대 앞에서 신세대의 청순한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고 신세대 앞에서 구세대의 묵직한 얼굴이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어울려야 할 두 세대인데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은
산과 바다가 어울리고, 하늘과 땅이 어울리고, 남자와 여자가 어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울린다. 어울리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나이 든 사람들의 시간적 행보가 너무 느리고 젊은 사람들의 진취력 행보가 너무 빨라서일까?


방해가 될 만큼 앞에서 어정거리지도 않는데 비켜가든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어디에 가서 조용히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젊은이들의 세상, 세상은 젊은 사람 위주로 변했고 젊은 사람 위주로 깊숙이 변해 간다. 겉도는 나이들, 오랫동안 흘러온 강이 바다 가까이 다 와서일까?강을 이루는 산골 물은 강이 되기 전까지는 그 속도가 빠르고 급하지만 먼저 이룬 강물과 만나면 그 속도가 줄고 바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걸음이 더 느려진다.세상만사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시작은 누구나 다 같이 빠르나 실패한 사람의 마감은 빠르고 성공한 사람의 마감은 느리다. 젊은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다.

먼 길 온 강이 평지만 흘렀으랴! 고비 고비 무수히 넘기고 굽이굽이 돌고 돌아 무사히 바다에 다다랐으니 누가 뭐래도 성공한 늙은 강, 붉은 노을 한 아름 안고 천천히 바다에 빠져드는 강 끝의 강물은 여유롭게 느리고 슬프게 아름답다. 주름진 노인들의 얼굴을 보면 “빙겔만“의 말처럼 ”정리된 고귀한 단순과 함성을 감춘 조용한 위대“의 흔적이다. 얼굴 안에는 무엇인가 가득한데 젊은 사람들은 그걸 보지 않는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임을 지키기에 힘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 해를 사는 데에도 올 여름 폭염보다도 더 더운 불쾌한 일이 점점 많아진다. 해마다 오르는 세금이며, 일 년에도 두 세 번씩 오르는 톨 비, 먹고 살기가 힘에 겨울 정도로 치솟는 야채 값과 식료품 값, 우표 값, 버스 값, 자동차 기름 값, 등 오르지 않는 것이 없다. 세계의 증권시장을 움직이는 뉴욕의 월가 사무실은 불경기 해고로 인해 점점 비어가고, 소규모 자영업가게도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허덕인다. 주머니가 비면 사람이 사람이 아니다.

생활이 어렵거나 주머니가 비면 무례해 지는 사회의 도덕성, 올 여름 더위보다 더욱 더 허덕이게 한다. 자연만이 힘들게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생활도, 사회도, 사상도, 예의와 도덕도, 환경도 불쾌한 쪽으로 변해 간다. 마음에 여유 한 조각 없는 젊은 사람 위주의 이 세상, 왜 매미가 다 사라졌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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