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국기념일과 건국대통령

2010-07-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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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근(무궁화상조회장)

1945년 8월15일은 일본제국주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주권을 되찾은 광복절은 1948년 8월15일이 맞다. 1948년 5월10일 유엔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탄생한 것이 대한민국이고, 1948년 8월15일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였으며 1948년12월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을 유일한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승인한데 근거를 둔다. 건국 이래 열 분의 대통령과 함께 우리 민족이 이룬 국력은 대단하다. 존경하며 자랑할 만한 인물이 없다고 푸념하지만 사람에게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총선거를 통해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이니 잘 통치하도록 법제도 안에서 조율하며 따르는 것이 애국하는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건국대통령의 공적을 찾아 대 내외에 자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국민된 도리라고 본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중국에 있던 임시정부가 인정을 받지 못하여 임정요원들도 개인자격으로 입국하였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군이 남쪽에 주둔하고 북쪽에는 종전 1주일 전, 대 일본 선전포고를 한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38선이 생기고 미군과 소련군에 의하여 군정이 시작되었다. 임시정부를 인정받지 못한 결과는 많은 애국단체가 생겨 혼란스러웠으며 그로부터 5년 후 6.25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이승만(1875년 4월18일~1965년7월19일)건국대통령의 공적 중 세 가지를 짚어보면서 해방 65주년과 건국62주년의 감격을 되새겨 본다.


첫째는 군정치하임에도 불구, 1946년 6월 전라북도 정읍에서 발표한 이른바 ‘정읍발언’을 통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발표하고, 1948년 8월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일이다. 만일 그때 건국을 하지 못하고 6.25전쟁을 치르게 되었더라면 우리나라는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한 단독으로 나마 건국을 고집하여 관철시켰다는 사실이 자랑스
럽다.

둘째,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신생독립국이 120여개에 이르고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두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하였지만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체제로 선택한 점이다. 그 선택이 지금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기초가 되었으며 120여 개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사회화에 이르기 까지 으뜸을 이루게 된 점이 자랑스럽다.

셋째,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시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 미군과 유엔군을 참전케 한 사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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