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장님, 당회장님

2010-07-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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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언젠가 고국방문을 하여 동료 목사들과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친구 목사들이 전에 없이 피차간에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 잠시 어리둥절하여 “호칭이 왜 그렇소? 회장이라뇨?” 하고 물었더니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이 목사는 미국 시골뜨기라 뭘 모르는구먼. 이 바쁜 세상에 거추장스럽게 당회장이라고 길게 부를 게 뭐 있나? 간단하게 줄여서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부르기도 편하고 듣기도 좋고 남들도 회장님 대우를 해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아니겠소?” 라고 단숨에 설명을 한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 생각했지만 속으로는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들어 속이 썩 개운치가 않았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회장이란 직함은 대기업체 최고 CEO를 두고 부르는 호칭인데 이를 교묘하게 교회의 담임목사의 호칭으로 둔갑시켜 부른다니 잘하는 일인지 한참 망설여졌던 때가 있었다.아주 오래 전에 이화여대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설문을 낸 적이 있었다. 장래 남편감들의
직업을 써내라고 했는데 최고 대통령에서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쓰는 중에 목사라는 직업은 맨 아래쪽에 이발사 다음의 서열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 양상이 달라져 목사라는 직업이 고위직과 거의 맞먹는 서열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 즈음에 내 후배 목사가 여름에 잠시 휴가차 뉴욕에 와서 우리집에 몇일간 묵으면서 “선배님 이제 그만 이민목회 끝내시고 한국으로 돌아갑시다. 요즘 목사님 정도라면 한국교회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 드리는 판국인데(은퇴후 대책까지 보장) 왜 서글프게 이민목회 하느라 사서 고생입니까?” 이게 나를 위한 권유인지 아님 유혹인지 잠시 머리 속이 멍했던 적이 있었다.


이유가 뭘까? 교회 신도수가 증가하면서 점차 대형교회가 생겨나고 따라서 교회 재정형편이 좋아지면서 담임목사의 파워가 상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이야 있건 없건 해외 여행을 연례행사처럼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담임목사가 교회재정을 마치 자기 사유재산인 것처럼 맘대로 쓰면서 그야말로 대기업체 회장님 행세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 재정이란 신도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정성껏 하나님께 바친 예물인데 그것을 어찌 담임목사가 맘대로 쓸 수 있단 말인가? 헌금을 바친 신도 중에는 당장에 저녁거리가 없어 굶어야 하는 빈한한 교우도 있거늘... 헌금 하나하나가 눈물겨운 제물들인데 그것이 어찌 목사의 사유재산과 같으랴!

금번에 뉴욕 할렐루야 대회 강사로 왔던 목사가 이민목회 하는 목사들에게 금일봉씩을 하사(?)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정말이지 화가 치민다. 도대체 그 돈의 출처가 어디란 말인가? 누구의 돈인데 해외에 나와서 마구잡이로 돈을 뿌린단 말인가? 이건 회장 행세가 아니라 찌들게 가난했던 농부가 서울 변두리 땅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된 <졸부>의 행세라 하겠다.

사도 바울은 고전6:10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뱁새가 황새 걸음을 흉내내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인 것이니 모든 목회자들이여, 일찌감치 회장의 환상에서 깨어나 시종일관 당회장 직책에 충실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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