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 사무라이 700년

2010-07-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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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복원가)

남아공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일본이 16강에 오르자 일본의 언론매체들은 1면 머릿기사를 특호활자로 도배하고 나섰다. “사무라이정신 만세” “사무라이 투혼은 건재하다” 이 기회에 일본에 있어서 사무라이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사무라이정신이란 무엇인가 고찰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고고학적으로 일본의 구석기시대를 12만년 전으로 보고 있으나 인류문화사는 일본역사의 시발을 기원전 1만년 빙하시대가 해빙기로 접어들면서 바다수면이 상승하여 일부 땅이 대륙에서 떨어져 나가 섬이 되어 오늘의 일본열도가 형성되었다. 일본땅은 화산지대로 매우 불안하다. 지역 사이에는 험한 산새와 호수로 차단되어 타지역에 대한 심한 배타성으로 똘똘 뭉친 지방 공동체가 수없이 형성되었다.

지역 씨족들은 자체방어를 위해 무사가 필요했고 이것이 사무라이의 원천이다. 사무라이(侍시)에는 가까이 모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화산지대라는 일본열도의 지리적 악조건은 오만가지 귀신으로 넘쳐흘렀다. 그 귀신 가운데 으
뜸가는 태양신(아마테라스 오마가미)을 중심으로 중소잡신(우지가미)이 모여 천황제국가를 건설(672-702), 오늘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221년 천황계승권분쟁(조큐의 난)에 깊이 관여한 사무라이집단은 천황가로부터 정권을 탈취, 명실공히 사무라이정권(가마쿠라막부)을 출범시켜 1868년 명치유신으로 통치권을 천황에게 돌려주기까지 장장 700년동안 일본을 지배하였다.


사무라이의 본질은 싸워 이기는 데 있다. 그 원동력은 충성심에서 나온다. 그리고 충성심은 죽엄을 통해 완성된다. 사무라이에 있어 구질구질하고 어설프게 죽어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이요 불명예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치욕을 피하기 위하여 비장하고 처참한 할복(셋부크 하라기리)을 갈구한다.
애도막부시대(1603-1868) “태평기”에 기재된 한 사무라이 대장의 죽음을 소개한다. <화살에 맞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대장은 스스로 목을 잘라 깊은 구덩이 속에 목을 감추고 그 위에 가로누워 쓰러졌다> 사무라이답게 무훈을 세우지 못하고 시시하게 화살에 맞아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부끄러워 죽은 얼굴마저도 가리려는 집념을 나타내고 있다.

사무라이 문화를 죽엄의 문화라고도 한다. 이 죽엄을 죽엄의 미학으로 발전시켜 오늘의 일본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고교야구대회에서 결승전에 패한 팀의 외야수 한 명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유는 자신의 실수로 우리 팀이 졌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지방여론은 그럴 수 있다는 쪽이 우세하다는 기사 내용이다. 사무라이 700년은 사무라이정신으로 승화되어 오늘의 일본정신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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