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각한 학생

2010-07-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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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하필 그 애가 결석을 하다니…. 봄학기 20주 개근 후보가 겨우 2명밖에 없고, 내주가 방학인데 참 아깝다. 개근상 못 받는 것이. 한국학교가 의무 교육이 아니고, 주말에 열어야 하는 현실을 개탄할 수 밖에 없다. 주말에는 각종 행사가 모인다. 그 때마다 첫 번째로 한국학교가 탈락하고 결석으로 이어진다.
웬 일인가. 시간이 반도 지난 무렵 그 애가 상기된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다. “나 월드컵 보았어요” “누가 이겼지요?” 순식간에 오고 간 대화이다. 이것은 한국과 우루과이의 축구시합 중계가 있던 날 아침 벌어진 촌극이다. 아차차, 내가 그 애한테 해야 할 말은 무엇이었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축구는 양편 11명씩의 선수들이 공 하나를 발로 차서 골문에 공을 넣는 단순한 경기이다. 90분의 전. 후반전을 싸워봤자 스코어가 별로 올라가지 않는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단순함 때문에 갈린다.월드컵은 세계적인 축제이다. 국토의 넓이, 국민의 피부 색깔, 국가의 경제 상황이나 문화의 차이 등 하등의 관계가 없이 준비가 되면 참가할 수 있는 경기이다. 그래서 낯익은 나라와 낯선 나라 이름들이 뒤섞이는 재미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축구장, 잔디, 축구화가 없어도,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여럿이 놀 수 있는 게임인 점이다.


개별적인 스포츠 경기는 제각기 특징을 가진 재미가 있다. 간혹 “우리 애한테 어떤 경기 종목을 권하는 것이 좋겠는지...” 하고 의견을 묻는 부모를 만난다. 그 답은 정해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우선 많은 종류의 운동을 체험하는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운동뿐만 아니다. 무엇이거나 어디까지나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기악 연습에도 적용되는 철칙이다. 결정권은 본인 자신의 몫이다. 주위의 어른들이 그들에게 폭 넓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필자는 개인의 운동 기능 연마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팀 대항의 경기를 할 수 있는 운동종목을 택한다. 그 이유는 하나의 팀에 속한다는 것은, 인성 수련장에 속한 것과 다름이 없다. 운동 경기의 기능을 배우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공부는 좀 못 하더라도, 착한 어린이로 키우고 싶다’는 학부모가 꽤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양자 택일의 성질이 아니고, 둘 다 중요한 교육 목표이다. 욕심을 부리거나, 자기 중심으로 행동하거나, 친구들에게 인색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 하거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하거나...이런 모든 자녀의 행동은 부모의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어린 자녀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들은 미숙하고, 여럿이 어울려서 생활하는 기회를 충분하게 갖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팀워크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것이 스포츠를 통한 것이라면 첫째 즐겁다. 승리를 목적으로 규칙을 지키고, 리더의 지시에 따르면서 협력하고, 서로 결점을 보완하고, 게임을 평가하고, 기쁨을 나누는 과정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자녀들이 스포츠 팀에서 심신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은 싱싱한 초목과 같다.

머리와 손이 인류 문명 발달을 이끄는 것처럼, 지식과 인성이 개인의 발전을 가져온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장래 어떤 일을 하든지 그 기초가 된다. 성품이 좋은 것도 어떤 일을 하든지 그를 돕는다. 앞의 두 가지를 골고루 향상시키려면, 친구들과 잘 놀 수 있고, 잘 협력할 수 있고, 잘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럿이 같이 노래를 부르기, 책읽기 그룹 만들기, 그룹으로 벽화 그리기, 꽃밭 가꾸기, 동물 기르기, 내 책 만들기 등 얼마든지 있다. 한 명보다는 두 명이 좋, 서너 명이면 더욱 좋다. 친구 많은 사람이 부자이고, 친구 사귀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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