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선택은 우리 몫이다

2010-07-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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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버려진 지푸라기가 새의 주둥이에 물리면 보금자리가 되고, 농부의 손에 잡히면 새끼줄이 된다’는 어느 시인의 글이 있다. 하찮게 보이는 지푸라기 하나도 누구의 손에 붙들리느냐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진다.

소중하게 태어난 인간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술꾼의 손에 붙들리면 술자리의 패거리가 되고, 장사꾼과 어울리면 장사꾼이 되기 쉽다. 부처의 손에 붙들리면 그래서 불교 신자가 되고,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면 그리스도인이 된다.

이런 때문인지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미국에 첫발을 내딛는 이민자의 삶도 달라진다. 대부분의 경우 형제, 친척 아니면 친구나 동향 사람들이 픽업하러 공항에 나온다.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사는 그 사람이 부럽게 마련이다. 그래서 잠시 그 집에서 짐을 풀고 지내다 보면, 그 집 주인이 하는 직업 비슷한 걸로 생계의 수단이 정해지기 쉽다.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장사하는 사람이 되기 쉽고, 보험이나 부동산 중개인이 마중 나오면 그와 유사한 업종의 일에 종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옛말이 있다. 이런 속성을 잘 깨달은 맹자의 어머니는 그래서 자식의 교육을 위해 시장터에서 산기슭 외딴 곳으로, 마지막에는 서당 근처로 3번씩이나 이사하여 맹자를 훌륭하게 키워낸 ‘맹모삼천지교’의 본을 보였다.

알고 보면, 존재하는 만물은 누구나 주위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 일례로 알래스카에서 사는 에스키모족의 피하지방은 그래서 그런지 몸 안의 열의 손실을 막기 위해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의 그것보다 두 배 이상이 두껍다. 여름철에 녹색이던 개구리의 피부색깔도 가을철이 되면 낙엽에 가까운 갈색으로 변한다. 바람이 많은 곳이나 키가 큰 나무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잎사귀가 가늘어지거나 줄기가 적어진다.

사막에서 서식하는 어떤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물을 찾아 수마일 넘게 뿌리를 뻗어나간다. 인간도 이와같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끝없는 삶의 갈증으로 ‘하느님’을 찾아나선다.

이제 문제는 들녘의 지푸라기가 누구의 손에 붙들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듯, 우리 인간도 어떤 ‘종교’에 붙들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떤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가를 보고 잘 가려 좋은 나무에 붙어 있어라. 그러면 너희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어떤 ‘종교’를 고를 것인가는 그래서 온전히 우리 각자의 몫이다. 우리 모두는 창조주로부터 ‘자유의지’를 선물 받은 때문이다.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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