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60년 전의 빛, 우리 모두의 빚

2010-06-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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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하면 먼저 전설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를 떠올리고, 가끔 브라질을 물리치기도 하는 축구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 나라와 관련되어, 제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있습니다. 월드비전 구호활동을 취재하려는 TV방송사의 요청에 따라 1998년 대지진 피해를 입은 콜롬비아 아르메니아 지방을 인솔자로 방문했을 때 만난 한국전 참전 노병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분은 취재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날 아침, 우리가 머물던 호텔로, 콜롬비아 육군 정장 차림으로 예고없이 불쑥 나타나셨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우리에게 “감싸합니다”라는 어눌한 한국말과 함께 악수를 청하시며, 취재차 방문했던 동네에서 우리 모습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 오늘 찾아왔다며 자기를 소개하신 그 분의 그윽한 눈동자 저 멀리로부터 생생히 되살아나는 전쟁 회고담을 듣는 동안, 먼 나라 콜롬비아의 작은 시골도시에서 수십 년 전 우리에게 생명의 빚을 안겨주었던 참전 용사를 만났다는 감동이 밀려왔지만, 그 분은 우리를 잊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미안함을 넘어선 죄책감은 애써 감추어야 했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극동의 작은 나라를 돕기 위해 기꺼이 짐을 챙겨 집을 나섰던 4명의 그 마을 젊은이들 중 부상자를 포함한 3명만이 몇 년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그 분의 회고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제 기억에 살아 있습니다. 일정에 쫓겨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원망스럽고,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무게는 아직도 마음의 빚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12년 전 콜롬비아에서 내가 느꼈던 마음의 빚은 나만의 것이 아닌, 60년 전 전쟁세대의 우리 어르신들이 받았던 생명의 빚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든 한국인들이 느껴야 할 사랑의 빚일 것입니다.

올해는 한국전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 주기를 끝내고 새로운 주기로 나아가는 출발선에 선 지금, 마음의 빚을 청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무게를 계속 안고 가야할 것입니다. 월드비전은 6월부터 한국전 참전국 중, 아직도 빈곤과의 전쟁으로 고통받는 6개국을 선정, 그들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필리핀, 태국, 인도 등의 아동들만을 지정해 돕는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 참전 6개국 아동 결연 후원 캠페인’입니다. 비록 참전용사들은 연로하시고, 많은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우리가 그들의 후손들을 돕는다면 그들에게 자신들의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기쁨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존 레논은 영화 킬링필드 주제곡 ‘Imagine’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지구상에 나라의 구분이 없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가진 것이 전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죽일 일도, 또 목숨을 바쳐야 할 일도 없으며, 욕심낼 일도, 배고픔도 없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 공존하며,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어쩌면 나를 몽상가라 부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에요. 언젠가 분명히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이고, 그러면 이 세상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꺼이 몽상가가 되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첫 번째 프로젝트는 60년 전의 생명의 빚 갚기가 되겠지요.


박준서 /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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