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Shall We Dance?

2010-06-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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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짙은 녹음과 만개한 꽃접시들은 눈과 마음을 호사시켜 준다. UC샌디에고 기숙사에 사는 딸 덕분에 가끔씩 청잣빛 바다를 한걸음에 달려가곤 한다.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6월의 바다엔 녹즙을 몇 방울 떨어뜨린 듯 더 깊은 시원함이 일상의 찌끼들을 한순간에 무채색으로 바꿔놓는다. 모든 것을 끌어안고도 말이 없는 엄마의 열두 폭 치마 사랑 닮은 바다 속. 바다는 지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온갖 것들을 흡수해 자신의 깊은 곳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동질감과 녹아 없어지는 자유로움을 선사하는 것 아닐까?

이미 부모 품을 떠난 두 아이들과 남은 네 아이들을 바라만 보아도 왠지 모를 먹먹한 감사와 뭉클한 감동이 온몸을 휘감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내며 큰 아이를 키웠던 시간…. 하나님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보다 더 많이 당황했던 내 안에서 나의 부족함과 각질처럼 굳어져 있던 고집스러움, 편견, 욕심들을 보게 하셨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잠시 보살펴 주는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히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눈물의 시간이 양약이 되어 철없는 엄마를 성숙시키고 드러난 겉사람이 아닌 감춰진 속사람을 볼 수 있는 깊은 통찰력을 얻게 해 주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무엇’에 눈과 마음을 고정시키는 실수를 범할 때가 많다. 지금 당장 실수를 했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속사람을 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기다려줄 수 있을 텐데….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태도 때문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3학년에서 대학원 입학을 앞둔 아이까지 여섯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각질이 갓난아기 피부처럼 말랑말랑해진다. 아이들의 언어와 순수한 생각들이 엄마를 살찌게 하는 ‘천국녹용’이 되는 까닭이다.

요즘 여섯 아이를 가진 감사가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다. ‘난 고칠 게 많아서 여섯을 주셨나 봐요 하하하.’ 3명의 사춘기 자녀를 지나 연년생인 넷째, 다섯째가 사춘기 한가운데 서 있는 요즈음. 내 안에서는 행복한 ‘눈높이 맞추기’를 동반한 속사람 찾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한 부모에게서 나온 아이들도 이렇게 서로 다른데, 하물며 다른 가족, 이웃, 나라 간에는 얼마나 더 많은 이해와 기다림이 필요할 것인가. 바쁜 이민생활, 어려운 경제를 탓하며 몸과 맘을 움츠러드는 요즘에야말로 속사람을 보는 눈이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표면적 상황도 조금만 깊이 관찰해보면 깊숙한 이유들이 보이니, 이해가 가능해진다. 한 번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일, 작은 것 같지만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상대방의 속사람이 보이고 희망도 보이고 감사도 보이고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지고 때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속사람을 볼 수만 있다면 어느새 마음도 넉넉해져 삶 자체가 풍요로워짐을 경험한다.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도 자연과도 춤을 추고 싶어진다. 속사람끼리의 손을 맞잡고 추는 화려한 춤. “Shall we dance with me?” 초여름이 황홀해진다.


정한나 /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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