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 복제품 선교 복제품 메달

2010-06-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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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하는 교회가 부흥한다는 말은 자주 듣는 이야기다. 누가 시작한 말인지 모르지만 과연 맞는 말일까?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선교한다면 동기부터 잘못되었다. 선교는 교회 부흥의 도구가 아니다. 선교는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책임이며 목적이다.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에 열심 낸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전파된 나라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선교가 교회의 신앙문화로 자리 잡기까지는 수많은 서구 선교사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다. 그들이 뿌린 희생의 효과로 한국 교회는 한때 부흥의 절정도 경험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교회 부흥은 서서히 냉각기로 접어들고 있다. 젊은이들이 첨단 전자문화에 혼이 빠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과 종교에 대해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형 교회들은 고급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작은 교회를 쟁탈한다. 문 닫는 교회들이 늘어나는 형편이다.

작은 교회를 위협하는 대형 교회의 무기는 교회가 커야만 효과적인 선교와 구제를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작 대형 교회들의 선교 현장은 효과적인 선교는 온데간데 없고 돈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흥정하는 변종 인신매매 시장 같은 느낌이다. 선교지를 찾는 목회자나 선교책임자들은 귀족대접 받아가며 선교지를 할퀴고 온다. 선교사는 그들의 비위를 잘 맞추고 여행 안내역을 재치 있게 수행해야 한다. 수틀리면 선교비를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선교는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지만 이제는 한낱 복제품 메달로 진품을 대신하려는 메달 장사로 전락해 버렸다.


죽기까지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던 바울 사도는 선교사역 초기에 이런 결심을 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 전파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예수님의 평가였다. 사람들의 평가나 성공여부가 아니었다. 그의 선교방법은 현대 선교전략가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분명 낙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교를 만족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이렇게 자평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의 선교는 믿음을 지키고 자신의 전부를 투자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진품 메달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예배 장소를 빌려 사용하는 미국 교회의 신실한 여성 한 분이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수십 년간 교수들의 저서를 출판 관리하는 일을 해 왔다. 특별히 수년 전 양자광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대인 교수의 저서를 직접 교정 출판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다. 얼마 전 그 교수가 당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벨상으로 받은 진품 메달을 도둑 맞아버렸다. 노벨상위원회는 수상자들에게 하나의 메달만을 주지 않고 진품과 똑같은 복제 메달을 몇 개 더 준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진품을 도둑맞았지만 복제품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이 노벨 수상자임을 말할 수 있다. 진품과 복제품의 진위는 노벨상위원회가 쉽게 구분할 것이다.

예수님은 참 선교를 위해 목숨 바칠 진품 선교를 주장하신다. 복제품 선교는 우선 보이는 효과는 클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복제품이다. 진품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존재한다. 돈과 허영으로 진품을 대신하려 하지 말자. 바울처럼 진품 메달을 받기 위해 달리는지 자문해 보라! 선교는 달리다가 숨이 끊어진 마라톤의 최초주자인 아테네의 페이디피데스처럼 죽기를 각오한 열정을 바쳐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손경호 목사
보스톤 성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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