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의 체증

2010-05-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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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체증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되는 것처럼 속이 답답하고, 앉으나 서나 마음이 불편한 증세, 이런 스트레스 증세를 우리는 흔한 말로 ‘마음의 체증’이라고 합니다. 요즘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한인들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천안함 사건, 금강산 관광시설 동결, 김정일씨의 중국 방문, 중국 정부의 태도 등등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이해되는 일이 없습니다. 특히 그동안 북한 지원활동을 해 오면서 북한의 서민들이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눈으로 보고 온 사람이라면 요즘 현실을 보는 마음이 한층 더 답답할 것입니다.

북한처럼 지원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나라도 없습니다. 북한 주민을 돕는 민간단체의 경우, 대단한 물량이 아니기 때문에 서울에서 개성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일은 한국정부도, 북한정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한국에서 물건을 사서 중국으로 들어가려면 중국 세관통과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하는 수 없이 돈을 가져가서 중국 현지에서 곡물을 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중국정부는 자국의 곡물 수출을 조정한다는 이유로 매년 연초에 북한으로 들어가는 일체의 곡물을 금지하곤 합니다. 이럴 땐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올해에는 4월이 되어서야 이 금지가 풀렸는데, 그동안 어느 나라의 지원도 받지 못한 북한의 서민들은 양식을 사기는커녕 구경하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누구나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틈타서 중국의 민간 곡물상인들은 수출 금지가 풀리자마자 북한으로 쌀을 들여가서 중국 현지가격의 8배를 받고 북한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중국은 무역 거래가 없는 북한을 상대로 목숨줄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그리고 한껏 생색을 내면서, 자국 상인들이 폭리를 챙기도록 방조하는 셈입니다.

중국의 곡물 수출이 풀렸다고 해서 민간 지원단체들의 고충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북한의 세관을 통과하는 일이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북한 세관원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지원단체들을 쌀쌀맞고 고압적으로 대합니다. 평양에서 가까스로 허가를 받았는데도 현장의 고아들 사진을 찍는 일이 일체 허락되지 않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고용한 조선족 직원들도 수틀리면 체포 구금을 마음대로 하는 북한에 들어가기를 망설입니다. 일이 이렇다 보니 민간단체들의 북한주민 지원은 한국정부의 만류, 중국정부의 규제, 북한정부의 감시와 냉대 속에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어야합니다. 거기다가 왜 북한을 돕는지 모르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은 더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거기 말할 수 없이 고생하는 내 동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동족들은 북한정부가 하는 일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할 뿐더러 무슨 시민연대 같은 것을 결성하여 정부가 하는 일에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또 그들은 자유롭게 세계뉴스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 세계로 여행이 허락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북한정부가 하는 일에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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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들은 이유 없이 배고픔의 고통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정말이지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결코 마음 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 집안 식탁에 앉아 차려진 음식을 받으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아 울컥 마음의 체증이 다시 나타납니다. 북한 주민들의 핏기 없는 얼굴, 못 먹어서 자라지 못한 고아들이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북한을 도와야 하느냐”는 핀잔성 질문을 받으면, 요즈음 저는 그냥 ‘웃지요’.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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