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 ‘영국신사’에서 ‘장발목사’로

2010-05-12 (수)
크게 작게
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가 목사 같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제 머리가 좀 길어서일까요?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지 대략 7~8년 된 것 같습니다. 남자치고는, 특히 목사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머리가 길죠. 그래서 예술인으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예술인은 아니고 그저 평범한 목사일 뿐입니다. 꾸지람도 많이 들었습니다. 히피족, 역술인, 걸인 같아 보인다구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머리를 기른 후부터 다른 교회의 설교 부탁이나 강사 초청도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간혹 머리를 기르는 이유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아주 실용적인 것입니다. 30대 중반까지는 저도 헤어스타일에 무척 신경을 썼습니다. 전도사 시절 헤어스프레이를 하도 많이 뿌리고 다녀서 ‘칼머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목사가 된 후에도 늘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는 단정한 머리를 고집해 왔었습니다. 잘 정돈된 머리와 늘 반듯한 정장에 권사님들로부터 ‘영국신사’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었지요.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교회에 가려고 바쁘게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외모에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며칠 후 머리 손질에 쓰는 시간과 비용을 꼼꼼히 따져보았습니다. 매일 머리를 감고, 드라이하고, 빗질하고, 무스를 바르고, 스프레이 뿌리고,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가는 일 등을 계산해 보니 그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깝게 여겨졌습니다.

그 후 연구와 실험(?)을 통해 적당히 긴 머리(제 경우는 머리가 어깨에 가볍게 닿을 정도)가 시간과 돈을 가장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냥 한 번 머리를 감고 손으로 몇 번 툭툭 털면 끝이니까요. 시간과 돈을 얼마나 절약하느냐고요? 시간은 머리 손질이 일주일에 1~2시간, 미용실 방문이 매달 두어 시간, 돈은 최소량의 샴푸를 사용하고 아내가 서너 달에 한 번 머리를 잘라주는 것을 감안하면 1년에 500달러 이상 절약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꼭 필요한 옷만 사서 유행에 관계없이 십년 이상 입고, 외출할 때 선블럭 외의 화장품은 쓰지 않는 털털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더군다나 청년 문화사역을 한다는 목사가 의외로 패션 감각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을 때 자존심도 상했고, 말끔하게 화장까지 하고 TV에 나오는 세련된 목사님들을 보면 은근히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제 자신의 꾸미지 않은 외모가 익숙하고 주위 분들도 편안하게 보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왜 구태여 이렇게 사냐고요? 시간 및 금전 절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폼생폼사’, 즉 외모를 너무 중시하는 세상 풍속과 싸우려는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요즈음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 너무 심해지고 있습니다. 패션, 헤어스타일, 스킨케어, 성형수술 등에 쓰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얼마든지 좀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플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해 저는 마음의 평안과 영혼의 풍요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저를 ‘영국신사’로 불러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의 요즘 별명은 ‘장발목사’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더 좋습니다. 아무래도 목사는 제임스 본드보다 세례 요한을 좀 더 닮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나님도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므로.


이용욱 목사
하나크리스천센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