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네버랜드’를 꿈꾸는 아이들

2010-04-28 (수)
크게 작게
영원히 자라지 않은 아이, 피터팬을 모르는 분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가 피터팬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 월트 디즈니 제작의 만화영화를 통해서입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돌리기 등 계절마다 바뀌는 동네 남자 아이들의 놀이세계에서 지존으로 군림하며 천하에 적수가 없음을 한탄하다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끔은 여자 아이들의 공기놀이, 고무줄 넘기 세계를 침략하곤 했던 ‘외로운 왕’에게 피터 팬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가 사는 세상은 놀라움과 부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맞닿은 곳. 우거진 숲이 있고, 그 숲 깊은 곳 어딘가에 떨어지는 폭포가 부챗살 무지개를 펼쳐내는 곳. 아이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금빛가루를 뿌려대는 요정 팅커벨이 존재하며, 애꾸눈 해적 후크선장과 그 후크선장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뱃속에 시계를 삼킨 악어 등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그들만의 세상 네버랜드는 나의 이상향이었고, 꿈꾸던 무릉도원이었습니다.

그 이후, 나는 ‘피터박’이 되었고, 서울 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내가 살던 동네는 당연히 네버랜드가 되었습니다. 방학이면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하루종일 피터팬 놀이를 하는 게 일과였습니다. 그러나 역할놀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진짜 피터팬인 양, 나무에서 뛰어내리다 다리에 금이 가는 참변(?)을 당하고, 한 달 이상 깁스를 해야 하는, 피터팬답지 않은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나의 짧지만 찬란했던 피터팬 시절은 무참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피터팬은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모험을 제공하는 유쾌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지만, 사실, 1904년에 완성된 제임스 매튜 배리의 원작에 등장하는 피터팬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울면서 잠을 청하는 부모에게서 버려진 슬픈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 역시, 보모가 한눈을 파는 바람에 유모차에서 떨어져 버림받은 아이들입니다. 그들과 동병상련을 느끼는 피터팬이 그 아이들을 자신이 사는 네버랜드로 데려온 것입니다.


네버랜드는 버림받은 아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축복받은 땅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축복받은 땅은 ‘네버랜드(Neverland) 즉,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더 강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버림받고, 소외된 아이들이 없으면 그런 장소가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피터팬과 그의 친구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난, 기근, 재난, 전쟁, 질병 등으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내동댕이쳐지는 아이들. 그들이 바로 아픈 가슴으로 살아가는 21세기의 피터팬들입니다. 그들은 매일 자신들의 아픔을 보상해 줄 축복의 땅 네버랜드를 꿈꿉니다. 그리고 네버랜드는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따뜻한 가슴입니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계절, 5월. 여러분의 활짝 열린 가슴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네버랜드의 희망의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박준서 / 월드비전 부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