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리는 지혜

2010-03-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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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내 ‘무소유’란 단어가 화제가 되었다.

보통사람들은 물론 주일 설교에서도 ‘무소유’는 기독교인들에게 욕심을 접어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혜를 일깨웠다.

모든 게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면서도 선뜻 조절되지 않고 끝없이 솟는 욕심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주일 설교에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 세우다가도 어느새 예전의 모습으로 익숙해져 가며 타성에 젖는다.

그 타성으로 인해 또 다음 주일에는 더 큰 회개를 해야 한다.

돌아보면 모두 아쉬움 뿐이다.

온갖 자금을 동원해서 무리하게 장만한 부동산은 타이밍을 못 맞춰 두 손 들어야 한다.

그간 고생 끝에 한두 푼 모아 놓은 알토란 재산이 반 토막으로 줄었다.

남들은 시기를 잘 맞추는데 자신에게만 행운이 돌아선 듯하다.

자식 교육이란 명목 하에 시작한 이민생활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자식에게 소홀해 부모의 기대감을 저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차라리 모국에서 자랐으면 저렇게까지 방황하지는 않았으리라는 회환마저 든다.
삶이 힘든 건 주어진 일상에 충실 하느라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살았는데 남은 건 숏세일로 정리해야 할 융자가 많이 남은 집과 일만 하느라 서먹해진 가족관계 뿐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진 못해도 자식과의 유대관계가 원만한 가정은 부모의 근면을 보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식에게서 장학금이라는 보람의 선물을 덤으로 받게 된다.
좁은 평수의 집에 살아도 마음은 뿌듯하다.

큰 욕심 부리지 않아 지금 같은 혹한의 불경기에도 더 허리띠 졸라맬 궁핍을 겪지 않아 내심 편안하다.

쳇바퀴 돌듯 똑같은 하루지만 매일 매일이 다르기를 염원하며 살기 원한다.

그나마 자영업 혹은 세일즈로 뛰면서 이 땅에 사오정 같은 정년퇴임이 없다는 게 참 다행스럽다.

나이를 먹어도 손수 운전해서 가고 싶은 곳 다 가보고 아직도 내 힘과 정열을 쏟을 일터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힘겹게 이민 온 나이 그대로를 항상 기억하게 하는 젊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그나마 풍요롭게 한다.

미국처럼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이 서로 큰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공감하며 살 수 있는 나라에 사는 것도 행운이다.

단일민족은 아니어도 서로가 정해 놓은 법과 규칙에 의해 정갈한 질서 속에 상대를 존중해 주는 예의를 스스로 배우게 된다.

대단한 부자보다 주어진 삶 속에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삶의 부자임을, 소박한 삶 속에 작은 행복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무소유’란 책을 다시 펴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법구경에 이런 비유가 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쇠를 먹는다.’

마음이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으로 너무 자신을 욕심으로 힘들게 하면 그로인해 스스로 황폐해진다는 말이다.

무소유란 말은 종교인이 되기전엔 진정 행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끼고 있기 버거운 욕심들은 과감히 내려놓고 버리는 지혜를 늦게라도 배우고 싶다.

그 욕심이 오히려 자신을 녹슬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며 집착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던질 때 얻어지는 자유라는 멋진 선물을 잠시 기대해 본다.

카니 정 /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562)304-3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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