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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아니면 죽음…사육곰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

2024-09-25 (수)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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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도심동물들 - 갈 곳 없는 반달가슴곰

구조 아니면 죽음…사육곰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

세 다리가 잘리면서 뒷다리 하나만 남은 곰. 주로 태어난 해에 옆 칸의 곰이 물어뜯어서 생긴 부상은 사육곰에게 평생 흔적으로 남는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구조 아니면 죽음…사육곰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

강원도 동해시의 한 사육곰 농장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18개 농가에 남은 사육곰 279마리(올해 2분기 기준)에게 주어진 양 갈래 길이다. 2022년 민관합동으로 40여 년에 걸친 사육곰 산업을 끝내기 위한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2026년 1월부터 곰 사육과 웅담 거래는 전면 금지된다. 사육곰 복지 문제가 대두되고, 허술하게 관리되는 곰 농장에서 지난 10년간 최소 20건 넘는 탈출 사고가 이어지면서 관련 산업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데 따른 결과다.

사육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이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반달곰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같은 반달곰이지만 사육곰은 복원은커녕 철창에 갇혀 웅담용으로 도축되는 날만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일본이나 동남아 등에서 들여온 다른 아종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에 사육곰을 위한 생크추어리(보호시설)를 짓고 있다. 비용만 각각 약 110억 원, 260억 원이 들었다. 올해 12월 준공되는 구례군 보호시설에는 49마리, 내년 12월 준공 예정인 서천군 보호시설에는 70마리가 들어가게 될 예정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각 보호시설의 운영은 국립공원공단과 국립생태원이 담당한다.


사육곰 보호시설이 지어지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먼저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못하는 160마리 곰들의 처우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2026년 이전까지 노화로 죽거나 웅담용으로 도축되는 수를 고려한다고 해도 최소 100여 마리가 보호시설에 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2022년 발표한 ‘곰 사육 종식 이행계획'을 보면 농가는 사육 포기 시 보호시설로 가기 전까지 곰을 보호, 관리하거나 2025년 말까지 자율 처분을 하도록 돼 있다. 농가에 조기 도살을 유도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농가, 시민단체와 소통하면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곰 매입 비용 놓고 정부 vs 시민단체 입장 차 여전

환경부는 연말 공사가 끝나는 구례군 보호시설의 경우 당장 내년 상반기부터 사육곰을 수용한다는 계획이지만 또 하나의 큰 산이 남아 있다. 곰 매입과 이송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놓고 정부와 시민단체의 입장 차가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무상 증여로 보호시설로 보낼 수 있게 확보한 곰은 15마리 정도다.

환경부는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에 따라 “정부는 보호시설을 짓고, 곰을 안전하게 구조하고 이송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단체들은 곰 매입 역시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협약서 문구를 보면 ‘시민단체는 모금, 후원 및 구조활동 등을 통해 사육을 포기한 농가로부터 곰이 보호시설로 안전하게 이송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하고 지원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부는 “곰 매입이 어렵다"는 점을 피력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이행계획 자료에는 ‘시민 모금이나 사회공헌사업 일환, 곰 매입 지원'의 역할은 단체·기업이 담당한다고 돼 있다. 이런 가운데 협약을 체결한 지 2년이 넘도록 협약 당사자들이 문구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사육곰 산업 종식의 모든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단체들도 현실적으로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가 곰들의 구조를 책임지는 게 맞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무상 증여나 매입 비용 등을 정하는 과정에서 농가와 설득, 협상하는 데도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보호시설 운영할 국립공원공단, 행정 편의적 운영 우려돼

전남 구례군 운영 기관으로 선정된 국립공원공단이 보호시설 운영 주체로서 적절한지에 대한 지적도 있다. 사육곰 전문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2024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조사 보고서'에서 “곰을 야생에 재도입하는 것과 시설에 가둬 잘 기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방사에 실패해 회수한 곰들의 복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공단 내외부를 가릴 것 없이 공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면 구례군의 사육곰 보호시설은 애초의 취지와 달리 동물원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전시 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수의사와 트레이너 등으로 구성된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강원 화천군에 보호시설을 만들고 13마리의 사육곰을 돌보면서 합사와 행동풍부화 등을 시도하고 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도 “공단의 업무는 현장 관리에 맞춰져 있지만 사육곰은 사실 치유 과정에 맞춰 관리해야 한다"며 “그동안 도입 방사됐다가 회수된 곰들의 이송 및 관리 방식을 보면 동물 복지가 아닌 행정 편의에 맞춰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공단은 20여 년간 반달곰 생태학습장을 운영하면서 개체 및 시설 관리 노하우와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접근성과 운영의 지속가능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례 보호시설을 지어놓고 정작 사육곰이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내년 구례 보호시설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며 “곰을 매입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공단이 곰을 수용할 준비가 안 돼있다"고 지적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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