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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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논리의 한국인

2009-11-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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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최근 LA에서 한 한국인 아파트 랜드로드가 세입자들이 제기한 몇 천달러의 손해배상 청구를 거절했다가 결국은 민사소송으로 발전하여 여러 차례의 분쟁 조정 제안을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다가 7만 여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배상 판결을 받게 되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 사례가 보도되었다.
분쟁 조정을 거부하고 흑(黑) 아니면 백(白)이라는 고집으로 끝까지 소송을 끌고 가다가 이런 낭패를 보는 한인들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분쟁으로 법원에 오게 된 한인들을 만나보면 유독 한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던 양 당사자의 주장이 자기 측이 모두 100% 정당하고 상대방이 100%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인의 의식이 이렇다보니 어떤 분쟁에서나 서로가 일부를 양보하고 합의하여 사건을 합의하도록 법원이 조정을 시도하지만 이를 받아들여 사건을 마무리하는 한인들의 사건은 아주 드물다.


미국에서는 민사사건의 90%가 이런 조정을 통해 합의로 해결되고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겨우 4%만이 조정으로 끝이 난다니 이것은 분명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의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뉴욕주에서는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 없이 법원의 재판까지 가지 않고도 적절한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미미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처리해주는 편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흔한 예로서 방을 빌려서 세를 들었던 사람이 집 주인과의 불화 때문에 분쟁이 생겨서 지불한 보증금이나 집세의 반환 요구 등으로 법원에 있는 CDRC(Court Dispute Referral Center) 라는 기관에 해결을 구하는 경우이다. 이 기관에서는 양 당사자를 불러서 서로의 입장을 듣고 합의점을 끌어내어 분쟁을 끝내도록 알선 조정(arbitration)하는 중재재판(Mediation Center)에 보내서 조정인(Arbitrator)이 상담을 하게 되어 있고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관을 통해서 간단한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고 또 사건의 규모가 커서 정식으로 민사법원에 소송을 한 사건이라도 그 절차 중에 법원은 거의 대부분 법원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당사자들끼리 서로 합의해서 끝을 내도록 유도 조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건이 이렇게 합의로 끝을 맺는 것이 미국의 풍토이다. 특이한 일은 한국 사람들이 이 중재재판을 대부분 기피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10여 년 동안 법원에 일하는 동안 위에서 말한 중재재판에 보내진 한인들의 사건이 합의로 분쟁을 끝맺는 경우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살펴보면 한국인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중재재판은 이름 그대로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들어 본 다음 서로의 주장을 조정 유도하고 양보를 이끌어 내어 분쟁을 해결하도록 합의시키는 중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 중재재판은 양보 또는 타협한다(compromise)는 자세에 친숙하지 못한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양보한다는 것은 곧 지는 것(defeat)이나 잃는 것(loss)으로만 생각한다. 말하자면 재판에 가서 내가 옳으면 이기는 것이고, 아니면 지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소위 흑백 논리 때문이다. 즉 두 당사자 중에 어느 한쪽이 정당하면 상대방은 당연히 부당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그 중간 개념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시끄러운 정치문제로 있는 세종시 문제나 사대 강 계획에서도 그 실질적 대안으로 타협안을 제시할 줄 모르고 흑백 논리로 싸움만 버리고 있는 것도 역시 한국인의 특성인 비타협 정치풍토 때문인 것으로 보여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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