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택도 기능이다

2009-11-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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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미국의 사랑받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열려 있었다. 그는 그 길들을 ‘가는 것도 좋고 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좋다’고 하였다. 인생을 한 곬으로 몰지 않는 열린 마음이 돋보인다. 이 경지까지 도달하려면 아마 자기 선택의 긴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은 여러 갈래 중에서 선택할 일의 연속이다. 일어날까 말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하루의 일정을 어떻게 짜고, 어떤 차례로 일을 할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까...등 다수 속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일들이 줄을 잇는다. 이 중에는 생활의 타성으로 이루는 기계적인 선택이 섞인다. 하지만 나머지는 골똘히 생각해서 선택할 일들이다. 단 한 번의 선택 잘못 때문에 받는 영향을 고려해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생활에서 겪는 선택의 다양성은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어린이들도 나름대로 좋고 싫은 것을 골라가며 생활하고 있다. 몇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도 다른 생활 기능처럼 단계적으로 배우게 된다. 이런 기회가 빈번할수록 기능 습득에 좋은 영향을 준다. 만약 어른들이 이 기회를 대신한다면 선택 기능 습득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어른들이 유의할 점을 세 가지로 본다. 첫째, 어른의 선택이 어린이보다 낫다고 생각하
는 것이다. 생활 체험이 많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부모는 당사자가 아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며 어린이는 새 생각을 낳는다. 둘째, 실패를 막아서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는 생각이다. 실패가 없는 성공은 없다. 부모의 지시만 따른다면 작은 실수는 막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의 큰 실패를 막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셋째, 시간의 낭비를 줄이게 되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학업의 성취나 생활 기능의 발달은 어린 시절 이루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부모와 자녀의 서로 다른 선택이 크게 충돌하는 기회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대학 선택이고, 둘째 전공분야 선택이고, 셋째 배우자 선택으로 본다. 이것들은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
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도 부모의 선택을 고집한다. 이유는 부모의 사랑과 체험을 통한 판단을 믿어야 결과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는 당사자가 아니다. 자녀의 미래는 당사자의 선택이 바람직하다. 부모는 의견을 주고 자녀의 취사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
다.
‘좋아하는 것을 하나 집으세요’ 학교 간식시간에 쿠키쟁반 앞에서 말한다. 한 학생이 말없이 서 있다. ‘좋아하는 색종이를 고르세요’ ‘좋아하는 책을 읽으세요’ ‘좋아하는 운동기구를 선택하세요’ 모두 신이 날 것같은 제안인데, 선뜻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교사가 어느 한 가지를 택해서 주어야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학생들이 있다. 가정에서 아마 밥반찬까지 골라서 먹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자유의 함량’은 선택의 범위가 넓고 좁은 것과 정비례한다고 본다. 우리가 존중하는 자유의 폭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적음에 따라 정해진다. 오직 한 가지를 놓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자유는 없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중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른이 그들을 돕는다고 생활 필수품을 골라서 주든지, 생활의 방향을 선택해 준다면 그들은 언제 어떻게 필요한 기능을 배우게 될까.

선택의 기능도 기회가 많을수록 연마된다. 그 과정에서 작은 실수들이 생길 것이다. 작은 실수들은 큰 실패를 막는다. 경제가 어렵던 시절 데이트할 때 여학생에게 선택군을 준다고 ‘자장면과 짬뽕 중 어느 것이 좋아?’라고 물었단다. 당시 두 가지는 같은 가격이어서 마음 편히 물었다는 남학생의 고백이
귀엽고, 그 정신이 장하다. 이번에는 어린이들에게 묻는다. ‘무슨 놀이를 할까?’ 엄마 아빠 얼굴 안 보고 대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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