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철인 경기를 보며

2009-11-03 (화)
크게 작게
정문길 (수필가)

얼마전 이곳 보스턴에서 가까운 프로비덴스 시(市)에서 철인 경기(Iron-man: 수영, 자전거, 마라톤을 합친 경기)가 있었다. 1240명의 철인들이 여기저기 웅성거리며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출발 신호와 함께 철인들이 바다 속으로 뛰어 드는데, 돌고래 무리들이 파도를 헤쳐 나가는 듯 장관이었다. 이들 중에 내 아들도 있었다.

수영 코스를 지나 다음 코스, 자전거를 타기 위하여 철인들은 모래 위를 뒤뚱거리며 뛰어 갔다. 20대 아리따운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절름발이, 불편한 몸으로 뛰는 70대 노인을 보며 구경꾼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저 만치 산자락을 돌아 나오는 낯익은 자전거를 보니, 이제나 저제나 애타게 기다리던 나는 연민을 금할 수 없었다. 웃으면서 골인하는 아들을 보며, ‘참 이런 고생을 왜 한다냐…’고 하고 싶은 말이 입술에서 뱅뱅 돌았으나, ‘수고 했다.’ 이 한마디 밖에 할 말을 잃었다.7월의 오후, 프로비덴스의 더위는 섭씨 90도를 넘나들었다. 마지막 마라톤의 종점은 시청 앞이다. 벌써 많은 철인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한번 더 전환점을 돌아가야 하는 자식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별 궁상스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저만치서 모습이 가물 거렸다. 뛰는 모습이 연습할 때 뛰던 활기찬 것이 아니었다. 호랑이가 뛰는 것이 아니라 거북이가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허리 뒤로 손을 놓고 뛰는 것이 허리에 ‘통증’이 있어서 저러나 싶었다. 온몸은 물에 젖은 종이처럼 쳐졌다. 전환점을 도는 순간, “건일아! 힘내!” 나를 보더니 ‘V’자를 두 손가락으로 보이며 미소지었
다. 이는 우려(憂慮)와 달리 자신 만만함으로 나에게는 비쳤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란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은 암에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드 프랑스(Tour de France)철인 경기에서 늘 일등했다는 신화를 아들은 자주 말했다. 또한 1982년의 쥬디 모스(Judy Moss)라는 여학생이 일등으로 들어오다가 쓰러져 100야드를 두 팔로 기여서 골인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어제 밤에 들려주곤 했다. 기어 오는 한이 있어도 오늘 경기를 주파하겠다는 결심을 아들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집 사람은 아들을 더 이상 서서 기다릴 수가 없었던가, 뛰는 코스로 달려갔다. 엄마로서 애가 타는 마음이 오죽 하겠나. 길가의 도움이들이 주는 물병을 받아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빙긋이 웃더란다. 웃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짠~했을까. 끝마무리로 들어오는 아들의 든든한 모습은 금메달이나 진배없다.

전례 없는 고초를 겪으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것이다. 이런 아들 모습은 우리 인간의 삶이요, 바로 삶의 현장에 있는 ‘나’에게 주는 메세지가 아닌가. 그렇다. 육신의 고통을 넘어선 그 영혼이 결코 꺾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 철인(Iron-man)이며, 철인(哲人)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해준 좋은 하루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