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의 존엄성

2009-11-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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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기 원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법 철학에서 확고부동하게 규정을 지어 기본적으로 인간의 평등으로 부터 그 존엄성을 보호 받는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존재하고 보호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개념철학에서의 규정이고, 실제로 사람에게 과연 평등과 존엄성이 평등하게 존재하는가는 많은 의문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존엄성에 대하여 어렵게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살면서 무시를 당한다거나 멸시를 당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미 존엄성이라는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는 사라진 것이다. 학벌이 미약하거나 배운 것이 별로 없어도 지혜롭고 평화롭고 이웃과 사회에 보탬을 더하며 사는 사람이 많은데 단지 학벌 문제로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이다.


한국일보 문학교실에서 후학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오랫동안 문학강의를 할 때 열심히 공부를 하던 한 분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수준도 꽤는 된다 싶어 한국문단에 추천을 할 때였다. 작품 열편을 정리하고 추천사를 다 쓴 후 이력서를 써 오라고 했더니 등단을 못하겠다고 울먹이며 말을 건네오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집안 사정에 의해서 겨우 국민학교 정도를 끝내고 살다가 결혼을 했고, 그 후 이민을 와 어느 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었던 문제는 그동안 서울의 명문 여자대학교 출신이라고 행세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결국 학벌을 빼고 등단을 시켰으나 나에게 가까이 있기에는 언제나 학벌문제가 부끄러웠던지 연락조차 하지 않으며 다른 문학단체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언제나 “학벌이 없어도 세상의 멍석은 차별하지 않고 넓은데 왜 허위로 치맛바람을 위장했을까?” 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상은 차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뒷말로 무시를 하니 그 사람이 어느 때엔 측은한 생
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어떨까? 작은 명차를 타고 다니면서 말없이 위장을 하지만 결국은 멸시가 싫다는 자격지심과 세상 사는 한 사람으로서의 떳떳한 용기 부재에서 온 결과였다.

내 기억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 골목길에서 같이 놀던 아이 둘이 심하게 싸우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심하게 때렸다. 맞은 아이는 가난한 집 아이였고 때린 아이는 동네에서 꽤는 잘 사는 집 아이였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더니 맞은 아이 부모가 때린 아이 부모를 찾아가 항의를 하다가 큰소리가 오고가는 어른 싸움이 되고 말았다. “여보시요! 돈푼이나 있다고 거들대는 것이요? 그러지 마시오, 한 동네에서 같이 살면서!” 가난한 집 아이의 부모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잘 사는 부모 쪽의 맞 대답이 “ 이거 왜 그래, 누가 널더러 못살라고 그랬냐? 너도 잘 살면 되지 않냐!” 잘 사는 사람 쪽은 당당했고 못 사는 사람 쪽은 무언가 모르게 멸시를 당하는 모습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후 나는 양 쪽 집 대문 앞에 가서 그 집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잘 사는 집에는 뭔가를 먹으면서 평온했고 못사는 집에서는 시끄러웠다. 맞은 아이가 부모로 부터 또 맞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부모의 분풀이가 아이에게 가는 것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람들 생활에서 평등하게 존재할까? 생각을 깊게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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