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이건 기사거리가 아니에요

2009-10-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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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희(취재 1부 기자)

취재하면서 가장 답답할 때가 “이건 기사거리가 안되는데요”라며 기자의 취재를 거부할 때다. 사고나 사건이 발생한 걸 알고 현장에 나갔는데 관계자들이 먼저 ‘취재의 필요성’을 판단하고 비협조적으로 나올 때 고생 아닌 고생을 하게 된다. 별일이 아닐지라도 당사자가 뭔가 숨긴다는 느낌이 들면 더 큰 사건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기자의 본능(?)에 의해 필요이상의 ‘적극적인’ 취재 의욕이 생길 때가 있다. 실제로 이런 경우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고 목격자들을 대상으로 장시간에 걸쳐 정보 조각을 찾아 끼어 맞추다보면 더 큰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을 알아내기도 한다. 물론 간혹 고생 끝에 얻어낸 정보가 진짜로 별일이 아니었을 때가 발생하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허망한 기분에 빠질 때도 있다.

며칠 전 발생한 차량접촉사고 현장에 취재 갔을 때도 이같이 별일 아닌 사고를 ‘쉬쉬’하는 바람에 30분 이상 취재해야 했다. 유독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인지라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사고가 났으려니 생각하고 피해차량의 운전자에게 다가가 사고경위를 들으려 했는데 보통 피해자와 달리 인터뷰를 너무나도 완강히 거부했다. 기사거리가 안되니 그냥 가라는 것이었다. 차가 크게 파손된 것도 없고 외관상으론 단순 접촉사고 같았지만 피해자의 태도가 다른 때와
너무 달라 뭔가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옆에서 계속 얼쩡거리며 사고목격자를 찾아 나섰다. 겨우 목격자를 한명 찾아 말을 들었는데 그냥 앞서가던 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뒤에 따라오던 차 두 대가 부딪혔다는 것이다.


목격자의 말대로 그냥 가자니 아무래도 무언가 속사정이 더 있는 것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얼쩡거리다가 한참 뒤에 피해차량의 운전자와 대화를 나누던 한 한인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20분정도 대화 후에 나온 얘기가 사실 부딪힌 차량이 같은 회사 소속 배달차량이라는 것이다.결국 자사 차량끼리 낸 사고니 신문에 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그야말로 별일이 아닌 사고라도 기자한테 말을 아끼면 괜히 커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을 투자하면 언젠가는 사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진짜로 기사를 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상세하게 전후사정을 설명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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