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노년

2009-10-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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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공자는 군자가 경계해야 할 일 중에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막 왕성해짐으로써 다툼을 경계해야 하고 노년이 되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힘이 빠지는 노인네가 되면 자연히 탐욕에 빠지기 쉽다고 공자는 일찍이 내다보았다. 이른바 명예욕이다. 우리민족은 타민족에 비해 유난히 명예나 감투를 좋아하는 것으로 드러나 있다. 심지어 이름도 알지 못하는 무슨 단체나 기관의 회장이니, 이사장이니 하면서 그것도 직함이라고 명함에 박고 다니면서 자기를 나타내지 못해 안달(?)이다.

한민족은 대체로 감투쓰기를 참 좋아한다. 역사적으로 왕족과 양반들에게 많이 당하고 살아온 민족적, 사회적 컴플랙스가 은연중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2세들이 그렇지 않은데서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지금은 단풍의 계절이다. 올해의 단풍은 과거 어느 해 보다도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87번을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세븐 레익스 드라이브가 나오고 캣츠킬 산이 나타나는데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우리인간도 나이가 들면서 저 단풍처럼 아름답게 보여야 되지 않을까?


뉴욕한인상록회의 회장인준을 둘러싼 내홍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회장이 도중하차 하면서 구성된 새 회장단과 이사진들과의 의견이 대립되면서 야기된 이 사건은 도무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않아 보인다. 양측의 격한 불화로 탄핵에다, 법적대응도 불사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상황이 갈수록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노인들은 서로 욕설하고 고함치고 쌍방 간에 몸을 밀치고 당기고 하는 목불인견의 추태를 보였고 경찰까지 등장해 강제 해산당하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노인들의 감투싸움이 어디 이 단체뿐이던가. 벌써 오래전부터 노인 단체들의 회장을 둘러싼 자리다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른 단체 중에도 60세 이상 노인들이 임원으로 활동하는 경우, 회장, 이사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리다툼은 종종 있어 왔다. 노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사회의 귀감이 되고 아랫사람들이 보고 배우도록 좋은 본보기의 표본이 돼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추한 모습을 후대들에 보인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의 모습이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노인공부의 입문서로 일본의 여류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쓴 ‘계로록(戒老錄)-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책에서 소노는 노년기에 노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11가지 중 나이가 평균수명을 넘어서면 공직을 맡지 말라, 체력과 기력이 있다고 다른 노인들에게 뽐내지 말라고 권면했다. 어떤 사람이 ‘나이 들어 대접받는 7가지 비결’이라는 글을 썼는데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많
이 하고 포기할 것은 깨끗이 포기하라고 하였다. 노년의 삶에 관한 글들을 대충 보면 답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아름다운 노년(老美)’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살라 ◆말없이 남을 감싸주고 격려하면서 살라 ◆항상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을 갖고 살라 ◆베풀면서 살아가는 여유로움도 실천하며 살라 등등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지 않는 삶을 살 때 그 노후는 아름다운 생으로 장식될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노인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이유는 노인들에게는 오랜 삶의 경험과 지헤가 있어 배울 것이 많고 무엇보다 인간사회를 위해 묵묵히 자기 짐을 지고 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평생을 감옥에서 살다나온 노인을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존경할 사람이 어디 있
겠는가. 육신이 늙은 것도 서러운데 추한 모습으로 살아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젊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서야 쓰겠는가. 올 가을 단풍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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