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쇼 때문이라고 말했잖아요”

2009-10-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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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벌거숭이 임금님’은 재미있는 동화이다. 새 옷 입기를 좋아하는 임금님을 재치 있는 재봉사가 망신을 준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낸다. “제가 이번에 만들어 드리는 옷은 이상한 옷입니다” “어떻게?” “그 옷은 마음이 정직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 재미있구나, 어서 만들어다오” 재봉사는 보이지 않는 옷감을 가지고 온갖 손짓으로 옷을 지었다. 임금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재봉사의 손길에 따라 새 옷을 입었다. 오늘은 새 옷을 입고 군중 속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날이다. 벌거벗은 임금의 행차를 보는 군중은 놀랐지만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으니까. 다만 그들의 눈만 휘둥그레졌다. 그 때 한 어린이가 외쳤다 “임금님은 벌거숭이야!” 그래서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되살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쩌다 TV를 켰더니 하늘에 접시모양의 기구가 두둥실 떠가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따라가는 기동대의 움직임으로 야단들이었다. 여섯 살 소년이 기구를 탄 채 공중에서 실종됐다고 해서 큰 사건이 생긴 것이다. 그 결말은 땅에 떨어진 기구는 비어있었고, 잃어버렸던 소년은 집 차고의 다락에 숨어있었다는 한낱 미국적 동화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에필로그가 더 재미있다. 그 소년의 부모가 이번 한바탕 쇼로 이익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고소 당할 위기에 봉착하였다고 한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소년의 한 마디 말이었다고. 가족 일행과 CNN과의 인터뷰 도중 사회자가 왜 다락방에 숨어있었느냐고 묻자 소년이 부모를 향해 외쳤다고 한다. “쇼 때문이라고 했잖아요”이 한 마디는 그 가족을 위해 치명적이었지만 어린이의 승리일 수밖에 없다. 부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소년을 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웠으니까. 어린이의 거울 같은 이 마음이 오염되었다면 이미 그는 어른 어린이가 되어 버린다. 유별나게 맑은 음성으로 말을 분명히 하던 영리한 그 소년의 표정을 되살리며 파란 하늘을 본다.


부모들은 가끔 이런 어린이들의 정직성을 경계한다. 부모들이 불리할 때는 목소리를 작게 하거나, 그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럴 때일수록 어린이들은 귀를 기울이고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부모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고, 부모를 감시하려는 것도 아니고,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려고 옆에서 떠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경우에 따라서 자녀의 나이를 늘리거나 줄일 때 부모는 우선 자녀의 얼굴표정을 살핀다. 작은 교통 규칙을 위반할 때도 교통순경보다 자녀의 판단에 마음을 더 쓰게 된다. 어린이들에겐 융통성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그들의 판단에 마음을 쓰게 하는 이유에 우리는 감사한다. 그들은 사회의 맑은 샘물이고 맑은 공기이다.

요즈음 매스 미디어의 눈부신 발달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자라는 과정을 단축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자연스러움보다도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거나, 솔직한 표현 방식을 세련미가 없다고 간주한다거나, 자연에서 놀이감을 구하는 것보다 상품화된 장난감을 선호한다거나, 남녀의 건강한 사랑이 섹시 일변도로 변한다거나 하는 풍조를 자극하는 것이 매스 미디어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알맞게 균형을 잡으면서 자녀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부모의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이 있다면 알맞게 조절할 수 있다고 본다.

누구에게나 사람의 일생이 한 번 밖에 없는 것처럼 어린 시절도 단 한 번 밖에 없다. 어린 시절을 마음껏 즐긴 사람만이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어린이들이 충분한 그들의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돕자. “쇼 때문이라고 말했잖아요”라고 말한 것을 탓하기 보다 “내 생각이 옳지 않았다”고 말하는 부모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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