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들

2009-10-24 (토)
크게 작게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올해도 벌써 10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달력이지만 그 달력으로 시간이 감을 느낀다. 사실상 시간과 공간은 사람이 감지하기에는 너무나도 길고 크다. 어떻게 보면 처음도 끝도 없는 것이 공간과 시간이다. 그런데 사람은 태양과 달의 주기를 이용하여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달력이 한 장 한 장 떨어져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세월이 무척 빠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세월이 강물도 바람도 아닌데 강물처럼, 바람처럼 빨리 흘러가는 것은 우리의 느낌일 것이다. 느낌뿐만 아니라 기계처럼 사용해야 하는 우리의 몸이 옛날처럼, 젊은 시절처럼 말을 안 듣고 이 곳 저곳이 아프고 저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잡을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일 것이다. 열심히 살지 아니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에 그렇다. 아니 뒤처진다기보다는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와 생명까지도 위협받게 되니 분초를 마다하고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열심히 살아가던 엘리트 한인들이 왜 자살을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 신문 지상을 통해 알려진 자살하는 사람들은 연봉을 많이 받고 높은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야 모두 그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할 용기를 갖고 더 열심히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세상이다. 그 때엔,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상을 하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급하게 목숨을 끊지 않아도 그런 마지막 순간이 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왜 우주보다 더 귀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린단 말인가. 잠깐만 옆을 돌아보아도,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죽음 같은 고통의 때를 맞이할 수는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경제적인 문제로, 사랑의 문제로, 자존심의 문제로, 명예의 문제 등등으로 갈등과 고통 속에
서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넘겨야 하는 상황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라 하여도 절대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든 이겨 넘겨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건강하고 잘 나갈 때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돈도 잘 벌어들인다. 가정에도 문제가 없다. 친구 사이도 좋다. 어디를 가나 인기가 좋다. 특히 건강하다. 이럴 때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업에 실패를 한다. 돈을 벌어들이지 못해 아파트나 집을 은행에서 차압하려 한다. 가정에서도 부부싸움이 잦다. 이런 상황이면 드디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개의 경우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된다. 남자가 돈을 잘 벌어들이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과 아픔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당혹함과 무력감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래 계속되면 자포자기에 이르게 된다. 그
러면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하는 가족으로부터도 멸시를 받게 된다.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까지도 버리게 될 비참한 상황이 될 수 있다. 물론 돈을 벌지 못하니 돈을 주고 상담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주위에는 돈 안주고 상담을 해주는 봉사단체들이 많다. 그곳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살기 위해선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자살은 심리적 불안이나 압박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결행될 경우가 있다. 이런 심리적 불안이 계속될 경우에는 종교적인 신앙에 자신의 마음과 몸을 의지하는 것도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일주일이 지나면 11월이 된다. 산에는 단풍들이 곱게 물들어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단풍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면 곧 겨울이 된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들
이다. 시간과 공간의 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못한다. 때가 되면 다시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아니, 생명으로 태어난 우리의 모습들이다. 그 때까지 우주의 품에 다시 안길 때까지, 생명으로 살아있는 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살아있는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은 이 세상엔 없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