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은 기도와 산 기도

2009-10-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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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얼마 전에 한 아버님이 자녀문제로 찾아오셨다. 아이가 사춘기 때부터 하기 시작한 마약을 1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고 심한 충격 끝에 찾아오신 것이다. 물어물어 마약의 분야에 알만한 사람은 다 찾아다니시며 알아보곤 맨 나중에 나를 찾아오셔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도울 수 있는지 상세히 물으셨다.
아버지로서, 한 인간으로서 헛살아 온 것 같은 심경이 든다며 자식을 그렇게 만든 자신에 대해 정말 인생자체가 무상하고 허무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계시단다. 늘상 이러한 상담을 할 때 상대가 당하는 심경에 마음이 늘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또 다른 것 같다. 자식의 문제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진지하고 진실한 자세 앞에 내 자신도 숙연해지는 마음이다.

나는 내가 드릴 수 있는 정보와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다 말씀을 드리고는 다음에 또 만나기를 약속드리고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교회를 다닐 생각도 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도 없으셨던 분이 자식의 위기상황 앞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깊은 한숨 속에서 맞이하는 새벽이 하루 이틀… 이렇게 지내면서 문득 어느 새벽,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이렇게 답답한 심경을 교회에라도 가서 하나님 앞에 다 쏟아붓고 라도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드셨단다.


그러던 날 아들에게 이 아버지는 “아버지가 정말 너한테 미안하다. 내가 널 이렇게 만든 것 같다.”라며 아버지의 깊고 깊은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나오는 진심의 고백을 하게 되었다. 이 아버지는 아무 의도도, 무엇을 하자는 것도, 무엇을 바라는 것도 아닌 그냥 아버지의 깊은 진심을 아들 앞에 토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아들의 태도가 달라지더란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고 아버지를 염려하는 말들을 하며 자신이 마약을 끊기 위해
아버지가 권하는 기관에 가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치료를 받겠단다. 바로 치료의 출발이 시작된 것이다.

심각한 마약 복용자들을 상담하면서 내가 가장 힘든 것은 본인이 치료를 받고자하는 그 결심을 하게 하는 그 과정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상대를 결단하게 하는데 많이 실패했었고, 혹 그 결단을 이루어낸다고 해도 거기까지 겪는 과정과 수고, 그리고 시간이 상당히 결리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당사자가 치유기관에 가겠다고 결단만 하면 벌써 치료는 50%이상 이루어진 것이다 라고 확신하고 기뻐했었다. 그런데 이 아버지의 진심의 고백의 한마디가 아들의
결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기도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도는 사람을 가장 인간적이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이 있는 것이다. 때로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문제가 있어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하고 나서는 자녀에게 “네 속에 악한 것이 있어서...” “네가 교회를 안가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등등으로 자녀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으로 인해 자녀가 더 분노하고 그래서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난 이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살아있는 기도와 죽은 기도의 차이를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기도는 형식적이 아닌 가슴과 양심으로 하는 기도, 그래서 가장 인간적이고 양심적으로 말할 수 있고 행동하게 되는 것으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놀라운 생명력과 힘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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