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벨 평화상

2009-10-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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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 (전 언론인)


오바마 대통령이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나라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핵무기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그의 비전과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면서 그가 이룬 것보다 이루려고 노력중인 것을 지지한다고 상을 주기로 한 이유를 밝혔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의 지도력과 비전에 대한 입증이자 미국의 가치에 대한 찬사”라고 평가했다. 반면 비판 여론은 “영문 모를 일(뉴욕포스트)” “평화상의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다(CNN)” 한 극우 방송인은 “노벨상위원회가 탈레반, 이란과 뜻을 같이했다”고 극언하는가 하면 미국의 전 유엔대사 존 볼턴도 “노벨위원회가 미국인을 설교하고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다”고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 자신은 “매우 황송하다(deeply humble)며 겸손해 하고 있다. 이러한 논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가난한 미국시민들을 위해 의료개혁에 노력하면서 핵없는 세계라는 이상에 다가서려는 그의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고 있다. 그가 평화상을 받게되면 난제중의 난제인 북한핵문제도 평화해결쪽으로 가닥을 잡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6자회담이 될지 쌍무협상으로 갈지는 두고봐야 겠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전임자처럼 선제공격 등 네오콘식 강수로 전쟁의 참화를 초래할 위험을 선택한다는 것은 노벨평화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파들의 반대로 너무도 당연한 의료제도개혁안이 지금 입법을 앞두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앞에는 이밖에도 테러와의 싸움, 이란 핵문제 날로 악화되는 아프간정세 등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이번 평화상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미국대통령에게 전쟁이 아닌 평화를 호소하는 인류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있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겠다.
노벨상 가운데 물리·화학·의학 등 고도의 전문분야 공로자에게 주는 상에는 이러쿵저러쿵 뒷얘기가 없지만 주관적 평가영역이 넓고 정치색 짙은 평화상에는 이전부터 말이 많았다. 비폭력 평화의 상징인물인 인도의 간디를 제쳐놓은 것도 그렇고 미국의 26대 루즈벨트 대통령이 상을 탔을 때도 그랬다. 러일전쟁의 확전을 막고 포쓰마쓰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상을 받았는데 “피로 얼룩진 얼굴로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를 사랑한다”면서 마닐라 공격으로 필리핀을 먹었고 젊은시절 기병장교로 쿠바에서 맹활약하는가 하면 가쓰라 테프트 협정을 비밀리에 승인,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게 도와준 호전인물이었다.

노벨평화상 받기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월남전이 끝나갈 무렵, 북부월남 외상 레둑토가 그 사람. 월남전을 끝내기 위한 파리 평화회의에서 미국측 대표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의 맞수였던 그는 협상장에서 매번 키신저의 고단수 외교술에 넘어가 하노이에 돌아와서는 땅을 치며 상대에게 손은 것을 분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융단폭격으로 알려진 북폭이 한창일 때 하노이에서 키신저와 함께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레둑트는 그 자리에서 거부했다. 이유인즉 “전쟁하느라 바빠서 평화상 받으러 못간다”고. 진을 빼는 지루한 협상에서 합의된줄 믿고 돌아와 보면 또 폭격이니 배신당한 분노를 냉소
에 담아 이렇게 내뱉은 것이다. 키신저는 부리나케 날아가 상을 받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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