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어도

2009-10-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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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이어도는 분명 전설속의 섬이 아닌데도 우리에게는 아득한 전설속의 섬으로 떠 있다. 아니, 전설속의 섬으로 아련히 남아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긴 세월 동안 제주도 섬 사람들 가슴속에서 살아 온 이어도를 중국에서는 자기네 영토라고 우겨댄다. 대한민국 동해에서는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들먹거리며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서남 쪽에서는 중국이 이어도를 놓고 대한민국의 눈치를 보아가며 툭하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해상자원과 황금어장의 어획권 획득 때문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고지도에 우리의 영토임을 명확하게 밝히는 기록이 있어 아무도 자기네들 땅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 이어도는 분명히 우리나라 섬이고 아주 오래동안 우리나라 사람들 가슴 속에 파묻혀 있는 우리들 마음에 정서 한 덩어리로 떠 있는 섬이다. 인간의 정서는 법 위에 서 있고, 민족의 정서는 법으로 훼손하지 못한다.

아무리 경제우선주의 사회로 변해 가면서 인간의 정서가 삭막해 진다고는 하지만 한민족은 아름다운 민족이다. 몸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신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며 사는 민족이고, 돈과 명예에 높은 값을 매기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에다 후한 값을 쳐주는 민족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정신을 알고 영혼을 아는 민족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구, 하느님 맙소사!하며 애원하더니 아예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가사를 들여놓고 “하느님이 보호해 주시는 나라”라고 수시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쪽배 한척 지나가지 않는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이어도에서 노을이 마음놓고 옷고름을 풀어제치고 놀면 마음 놓고 사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랑의 슬픔을 피해 멀리 온 비바리의 마음에는 불이 짚힌다.


혹, 제주도나, 몇 사람 살지 않는 마라도에서라도 그리워 했던 님이 찾아 온다면 님을 그리며 바다 속에 들어가 일부러 심어 놓았던 멍게나 해삼을 따다가 작은 밥상에 정성 차려놓고 마주 앉아 쌓이고 쌓인 뜨거운 정을 나누다가 저녁 노을이 실타래 풀어가듯 어스름을 만들며 따스한 아부자리 한채를 깔아놓고 사라지면 눈읏음을 마주치며 손을 잡아주기 기다릴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사랑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안간힘을 쓰다가 터져 한라산 하나로 응어리진
섬 제주도, 살기 위해서는 세찬 바람보다도 힘이 세야 한다고 어미로부터 고된 훈련을 받은 갈매기들이 바닷가를 지키고 있으나 갈매기보다 더 힘이 센 제주도의 새, 그것은 억새였다. 햇빛은 그지없이 밝고 화려한데도 억새꽃에 와 닿는 햇빛을 그보다도 더욱 하얗고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정처없이 흩날려 보내는 억새들, 억새를 엮어 지붕을 만들면 모진 바람에 내려앉을 듯 한 지붕을 두 팔로 꽉 끌어앉고 보호하고 있는 돌담 사이의 초가집들. 그것이 제주도의 미소일 것이다.

비바리의 기다리는 마음은 어떻게 멀고 먼 이어도로 갈 수 있었을까? 제주도의 조류는 성질이 급하다. 하멜표류기를 쓴 네델란드 범선의 선장도 제주도 근해를 지나가다가 제주도의 조류를 이기지 못하고 제주도로 표류해 온 것이다. 일본 큐슈에서 먹고 버린 빈 깡통이 제주도 성산포에 표류해 왔다는 것은 제주도 근해의 조류 흐름과 그 방향을 알게했고, 제주도 바다에 쪽배를 띄어
놓으면 일본으로 간다는 그 조류를 이용해 새날이 와도 아무런 희망이 없고 노동을 해도 먹고 살기조차 힘든 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쪽배를 바다에 맡겨 일본으로 밀항을 했던 것이다. 비바리의 마음은 어느날 제주도에서 사라졌다. 그 비바리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간이역 이어도에서 마지막 밥상이 될지도 모르는 밥상을 차려놓고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섬이 전설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이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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