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언제까지 가정폭력인가

2009-10-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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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몇 년 전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는 내게 몸의 통증을 호소하며 이런 몸으로 살아서 뭐하겠느냐며 자주 한탄하더니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평소 후배가 해준 말에 의하면 그 후배는 일찍이 결혼 후 아이를 가졌을 때 복부를 남편으로부터 여러 번 걷어차이는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그 이후 그의 몸은 마음대로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속에서 멍이 들었는지 늘 힘겹게 살았다. 한마디로 후배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주된 원인이 가정폭력이었다.

가정폭력 하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전화기를 통해 숨가쁘게 들려온 어느 한인여성의 자신이 당한 가정폭력에 관한 고발이다. 이 여인은 남편의 폭력에 자주 시달려 왔다는데 이날은 거의 실신할 정도로 심한 폭행을 남편으로부터 당했다는 것이다. 이날 그의 남편은 집의 전화기 코드를 빼고 차고 문까지 내린 상태에서 이 부인을 닥치는 대로
사정없이 구타했다고 한다. 이 여인은 남편이 떠난 후 가까스로 기어 전화기를 꽂아 119에 신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여인의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체포되었다.


이런 잔인한 가정폭행 사건들이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가정폭력은 직업이나 교육의 정도와 무관하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한국은 미 국무부가 발표한 연례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한해동안 1만 1천48건의 가정폭력 피해사실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1747건이 기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여성부 통계에 의하면 결혼한 여성의 30%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가 사는 미국은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서 매 맞는 여성의 수가 1년에 25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은 15초에 한 명씩 미국의 어디선가 남자로부터 여성들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곳 한인사회에서도 가정폭력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전해진다. 뉴욕가정상담소에 따르면 가정폭력 때문에 상담소를 찾는 사람은 1년에 1500명 수준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24시간 핫라인을 통해 상담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실제 가정폭력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상담소 측의 관측이다. 한국인들의 관습이나 언어문제로 참고 살거나 수치심에서 ‘쉬쉬’ 하고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에서 가정폭력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날은 언제일까? 이제는 여성들도 사회 각 부처, 혹은 국가의 최고기관에서 남성들 못지않게 활약할 만큼 여권이 신장된 시대에 어찌하여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폭력은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살인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가정폭력은 이제 정말 우리 커뮤니티에서 사라져야 한다. 오죽 못난 남자가 힘이 약한 여자를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단 말인가. 부인에게 이따금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이 요즘 나이들어 부인으로부터 헤어짐을 요구당하는 한인부부의 황혼이혼이 한국에서처럼 하나씩, 둘씩 생겨나고 있다 한다. 느즈막에 참고 살던 부인들이 앙갚음을 하는 모양이다. 오뉴월에 서리 내리는 꼴 당하지 않으려면 남자들의 어리석은 가정폭력은 이제 좀 멈춰져야 하지 않을까.

가정폭력은 대부분 자격지심이나 무능력, 권위 상실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공연히 권위와 자존심을 내세우다 큰 코 다치는 일이 없도록 남성들은 조심해야 하겠다. 이제는 여자들이 무작정 참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아내에게 자칫 폭력을 행사하면 그대로 체포되면서 패가망신할 수 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질 때마다 결혼식장에서 마음깊이 다짐한 ‘....남편은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례사의 한마디를 떠올린다면 가정폭력이란 단어는 나에게서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10월은 가정폭력 방지의 달이다. 여성들도 함께 아내로서 내가 정말 남편에게 잘하고 있는지, 혹시 남성들이 흔히 말하는 맞을 짓을 한다고 할 만큼 남편의 자존심을 짓밟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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