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합리적인 사람이란

2009-10-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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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나는 언제 부터인가 주중에는 딸네 집, 주말에는 아들네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중생활을 하는 생활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가지고 있던 집을 팔고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오랜 동안 직장 생활하는 딸을 위해 외손자 외손녀를 돌보러 주중에는 딸네 집으로 이동한다. 딸네 집에서는 애들 등하교, 방과후 여기저기 라이드, 밥하고 빨래 청소하며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다가 주말에는 아들 집에 와서 편히 쉰다. 친 손자 손녀는 그냥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딸 집에서는 나의 노력을 제공해 주고 아들 집에서는 그들의 노력을 제공받는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부터 모든 살림의 전권을 쥐고 흔드는 딸집과 그렇지는 못하지만 아들 며느리의 대접을 받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아들 집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양쪽 다 똑같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가정의 장단점을 다 꿰뚫고 있는 나는 이집 저집에서 다 같이 잔소리꾼으로 유명하다.아무튼 나는 엄마가 수고하는데 대한 감사를 잃지 않고 예우를 갖추는 딸도 고맙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어미에게 항상 깍듯이 대접해 주는 며느리도 고맙기 그지없다. 매주 정신없이 이집 저집 왕래하는 나의 이 처지를 놓고 팔자타령만 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감사로 받
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문득 어릴 때부터 늘 들어왔던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생각난다. 비가 올 때는 나막신 장수 아들의 장사가 안 된다고 걱정, 날이 개이면 우산 장수 아들의 우산이 안 팔린다고 걱정하면서 걱정으로 세월을 보냈다는 그 어머니, 왜 그는 비올 때 우산 장수 아들 장사가 잘 된다고 좋아하고 비 안 올때 나막신 장수 아들 장사가 잘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생각만 했더라면 일생을 기쁨으로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안타까와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저질렀던 우를 범하기 일쑤다. 그녀의 교훈을 항상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사는 우리는 동서양의 장점만을 체득해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동양의 감성과 서양의 이성, 정적이며 동적인 인간, 동양의 정(情)과 서양의 개인주의를 공유하며 그 위에 인권 존중 사상을 겸비한 바람직한 인간 말이다. 또 우리나라의 오랜 고질병의 하나인 극좌우, 진보 보수의 이념 갈등과 동서지역 갈등도 우리가 꼭 해소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진보와 보수가 주장하는 것을 들어 보면 그 주장이 다 수긍이 간다. 내편 네 편 가를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진보와 보수를 다 겸비한 보통사람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보통사람으로 이루어진 중간 세력이 크게 확장되어 가야 한다. 또 전직 두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역 갈등을 해소하려고 그토록 애썼지만 그 장벽이 너무 높아 해결하지 못했다. 그 분들의 노력과 진심을 안 이상 그들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가 그것을 꼭 해결해야 할 것 같다.

현직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이 이룩해 놓은 업적 위에 더 큰 업적을 이룩하기를 바란다. 경제 개발 및 안정 고도의 외교 전술, 남북의 화해와 통합 등, 이 모든 것이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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