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나영이 사건, 판결에 문제있다

2009-10-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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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해 법정최고형의 중벌로 다스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매우 관대한 수준이다. 최근 발생한 나영이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수위를 보면 한국이 과연 법치국가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영이 사건은 57세의 만취상태인 조 모씨가 여덟 살짜리 어린 소녀를 교회의 화장실로 납치해다 감금 상태에서 때리고 목을 조르고 실신시킨 후 무참히 성폭행하고 실신상태에서 그냥 버려두고 달아난 너무도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법조계는 어찌된 건지 가해자에게 12년형 밖에 선고하지 않아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 사건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비록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할지라도 피해자가 내 딸, 내 동생, 내 손녀딸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영이는 이제 신체적으로 영구적인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가 평생 겪어야 할 정신적인 고통까지 감안한다면 나영이는 현재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가해자의 신상은 공개 안하고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나영이의 이름은 만천하에 공개되고... 거기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는 불과 12년 형만 선고했다니, 도대체 무슨 나라가 이런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도 법치국가 운운하고 G20 정상
국가가 어떻고 하면서 선진국임을 자부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 사건을 주시하면서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법조항의 문제점과 둘째는 그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판사의 자질 문제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오래된 남존여비 사상 하에서 제정된 법조항과 남성위주 사회에서 길들여진 법조인들의 성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성범죄에 대한 얄팍한 법리해석에서 비롯된 것이아닌가 본다. 범인은 수년전에도 강간치상죄로 감옥에서 3년형을 살다 나온 전과자라고 한다.
그 때 만일 한국의 법조인들이 그를 일찍 감옥에서 내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영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판사는 조씨가 술에 만취해서 의식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을 참작해 12년형을 선고했는데 이 판사가 과연 제대로 된 의식을 갖고 있는 법관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가해자가 심신미약이라고 한다면 나영이야 말로 불과 여덟 살밖에 안된 심신미약의 어린아이다. 그런 아이가 영구적인 불구의 피해를 입었는데도 그건 대체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범인은 어이없게도 자신에게 가해진 처벌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를 했다 기각을 당했다고 한다. 만일 판사가 기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 뻔뻔스러운 가해자에게 훨씬 더 무거운 처벌을 다시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음주운전만 해도 살인미수로 보고 중벌을 부과한다. 하물며 나영이 사건 같으면 미성년자 납치, 폭행, 감금, 살인미수, 성폭행, 유기 및 방치 죄까지 모두 합쳐 분명 수 백 년의 극형이 내려졌을 것이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과연 한국의 담당판사가 자격을 갖춘 법조인인지 그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본질 보다는 달달 외운 법 지식만으로 법을 집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법이 설사 그렇더라도 해석이 그 법을 만든 동기보다도 훨씬 더 낮은 수준의 결과를 가져왔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판결이다. 이런 법관은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마땅히 스스로 법복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제 후진을 면치 못하는 성범죄 관련 처벌법을 확실히 강화시켜야 한다. 미국은 15년 전 불과 7살의 여아가 성범죄 후 살해된 것을 계기로 이른 바 ‘메건 법’을 만들었다. 이법은 성범죄자의 경우 신상공개와 함께 재범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된 강력한 처벌법이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여성단체, 아동보호 단체들은 이를 표본삼아 차제에 어린이를 성폭행하는 흉악범들은 반드시 극형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모두 나서야 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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