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요양원은 만원

2009-10-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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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비 배 (CCM 의료재단 홍보이사)

며칠 전의 일이다. 롱아일랜드 쪽은 길이 아직 서먹해서 일찍 오피스를 떠나서 미팅 장소로 달렸다. 목적지에 일찍 도달해 근처에 있는 백화점엘 들어갔다. 첫눈에 명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꽃같이 화장을 한 여자가 내 얼굴에 향수를 몸에 살짝 뿜어대며 말을 시킨다. “전 향수에 알러지가 있어서요…” 점잖게 사양을 하니 이 꽃 같은 여자가 “이스라엘에서 퍼온 진흙으로 구워낸 신상품 마사지 크림을 프로모션하고 있어요” 모델로 의자에 앉으라고 유혹한다. 앉아서 마사지를 받으면 250달러짜리 크림을 세일로 150달러에 준다며 졸라댄다.

다른 세일즈우먼이 또 “뭐 특별한 상품을 찾고 있으세요?” “No, I ‘m just browsing Thank you.” 이제는 정말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들어온 문 쪽으로 발을 돌린다. “어머! 제이비 배?” 갑자기 난데없는 한국말로 거기다 내 이름까지 이 으리으리한 백화점 한복판에서 들려온다. 누군가 파악도 할겸 “네, 안녕하세요?”하고 머리를 숙여 보인다. “안녕하세요? 저 한 삼년
전에 뵈었잖아요? 어머니 아버지 때문에…” 날 왜 몰라보느냐는 듯이 채근해 댄다. 머리는 때 빼고 광내고 손에서는 내 한 달 봉급보다 더 많이 주고 산 명품 가방이 번득 광채를 뿜어낸다. “아, 네... 여긴 어떻게... ” “전 여기 쇼핑 잘 와요” “그러세요... 네, 부모님은 안녕하세요?” 반색하던 그녀의 얼굴이 흐려졌다.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잘 아시겠지만, 늘 들어 누워 계셨다가 가시고 아버님은 어머님 가시자마자 혈압으로 4개월 만에 따라 가셨어요.” 하더니 흑흑 느끼기 시작한다. “전 너무 효도를 못했어요. 너무 죽을 짓만 했어요, 가시고 나니까 너무 후회가 되요.” 이젠 꺼억 소리를 내며 운다. 내손을 잡고 울먹이는 그녀에게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신 날 부터 효자가 된답니다. 어쩌겠어요?” 위로와 작별인사를 하며 돌아서도 그녀가 누군지 영 생각이 나질 않았다.


늦은밤 집에 돌아오니 아하! 하고 그녀의 부모가 떠올랐다. 어느 날 사회복지기관의 신고로 나한테 돌려진 한국 노부부 케이스였다. 문도 없는 지하실에서 사는 메디케이드 케이스로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 내손에 까지 들어오게 된 케이스였다. 뉴욕 사회복지국에서는 동물도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 사는 노부부를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를 놓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2주 뒤에는 노부모의 연고자가 버젓이 살아있고 그분들이 살고 있는 지하실 건물 주인의 소유자가 친 딸인 것도 확인이 되었다. 그 때 한국 분들이 모여 계신 요양원은 만원사례로 곤혹을 치르던 생각이 났다.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 모두 부모에게 진 빚이 있지 않은가? 전쟁이 일어나도 우리 부모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폭격이 쏘아대던 그곳에서 우리를 품안에 넣고 지켰는데 우리는 왜 부모를 외롭게 했을까? 늙고 병든 부모보다는 우리 미래를 건 자식을 지켜야 되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그 때처럼 요양소는 항시 만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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