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라색 잉크 묻은 아프간 여성 손가락

2009-10-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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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 (의사)

50대 중반에 일찍 은퇴를 하고 세계 각지로 돌아다니며 배치된 병원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참전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를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는데 이라크의 참전했던 한 군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매일 밤 폭탄의 화상을 입어 몸과 얼굴 전체가 뱀이 꿈틀거리는 듯한 흉터로 덮인 아랍소녀의 고막을 찢는 듯한 울부짖음으로 한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다고 한다. 참전병사들의 우울증과 자살률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CNN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서 군의관들이 부상병과 다친 민간인을 응급 치료하는 박진감 넘치는 취재장면이 특집방송으로 보도되고 있다. 폭격으로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환자들은 헬리콥터로 야전병원까지 속속 후송되는 촌각을 다투는 숨가쁜 순간들이다.

한편으로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지닌 거대한 호수 카스피해 연안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열강들의 에너지 확보의 각축장으로 총성이 없는 최전선이다. 현대산업의 혈액인 석유를 서방세계로 운반하는 동맥인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는 크레인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건설현장이다아직 9,11 테러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2001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자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인 부르카(Burkha)를 벗어 던진 여성들이 거리 행진을 했다. 이슬람 율법에 갇혀 얼굴 없이 살아온 여자들이 맨 얼굴을 드러내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갑자기 국제사회는 지구 밖의 외계인 같았던 아프간 여성들에게 눈이 쏠리기 시작했다. 미국 주류언론들은 마치 아프간 전쟁이 아프간 여성 해방운동처럼 그녀들의 처참한 인권상황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8년이 지난 지금의 아프간 여성의 인권은 얼마큼 달라져 있는 것일까?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정권 아래서도 여성학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제테러의 뿌리를
뽑기 위한 아프간 전쟁은 병력과 막대한 군사비용을 쏟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은 아프간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생존권의 뿌리도 송두리째 뽑아가고 있다. 전쟁난민의 80%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다. 매춘과 성폭력도 늘어나고 있다. 전쟁과 마약은 뗄 수 없는 사이로 아프간은 아편천국으로 재배되는 마약은 저항세력의 무기자금으로 쓰인다.아프간 수도인 카불의 난민 캠프는 더러운 하수가 캠프를 가로질러 흘러나가고 있어 난민들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탈레반 무장세력의 기습 공세가 더욱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8월에 치른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선거는 수천 명의 민병대를 투표소에 배치하는 공포분위기의 또 다른 전쟁이었다. 이중투표를 막기 위해 투표한 사람의 손가락에 보라색 잉크를 묻히는데, 저항세력인 탈레반이 투표를 마친 여성유권자 2명의 잉크가 묻은 두 손가락을 잘랐다. 탈레반 저항세력인 탈레반은 누구인가? 그들은 험준한 산맥의 살인적인 추위와 칼날 같은 눈바람과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온 산악 부족의 거친 남성들이다. 탈레반의 이슬람 남성우월주의의 콤플렉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친미정부에 추파를 던지는 어머니와 누나들에 대한 배신감이다.

아프간 여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슬람 율법의 감옥에서 지금은 전쟁의 지옥에서 살고 있다” 아프간 전쟁은 여성 해방운동 전쟁이었을까? 아프간 대통령 선거 투표소에서 보라색 잉크가 묻은 아프간 여성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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