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바람직한 장학제도

2009-09-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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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학교성적과 SAT성적, 그 외에 에세이와 특별활동, 추천서 등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 그러나 성적은 좀 떨어져도 과외활동이 뛰어나고 에세이가 훌륭하다 던지, 경우에 따라서는 어려운 고비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서 지금은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잘해 나가고 있으면 남다르게 보고 예외로 뽑는 학교들이 꽤 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장래성, 그리고 숨은 능력을 보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다른 요건이 부족하면 입학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명문대학일수록 그 기준은 더욱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인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입학할 때 성적도 성적이려니와 특별히 에세이나 학과 외 특별활동에 열심을 쏟고 있는 이유다. 때때로 성적은 만점에 가까운데 어느 해 보면 하버드 등 명문대학에 한인학생이 입학원서를 넣었다가 떨어져 충격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아는 분의 자제 중에 사춘기 때 탈선해서 학교까지 중퇴했다가 훗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더 공부를 열심히 해 오히려 행운을 누리는 그런 경우도 보았다.


그 아들은 부모의 끈질긴 노력 끝에 갱단의 유혹에서 벗어나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를 마치고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 열심히 하여 무사히 공부를 마쳤다. 이후 그는 직장에도 모범학생으로 취직되었고 지금은 명문대학원으로부터 입학허가서도 받아내 원하는 꿈을 하나 하나 키워가고 있다. 이만큼 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인내와 노력을 하였겠는가. 그 대학원이 그를 받아들인 것은 모든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의지와 가능성을 본 것이리라. 한인사회에는 여러 장학기관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매년 장학금을 주기 위해 학생들을 선발한다. 이때 마다 사실 나는 약간 불만이다. 하나같이 장학기관들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편협된 시각으로 장학생을 뽑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장학재단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성적이 우수하고 리더십을 갖춘 학생들만 골라 선발한다. 즉 한인 커뮤니티에서 뛰어난 극소수의 학생들만 수혜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지도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리더를 따라 가는 사람들, 즉 가난하거나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잘난 사람만 있고 못난 사람은 모두 낙오되는 그런 공동체는 바람직한 집단이 아니고 죽은 집단이나 마찬가지다.장학재단들이 하나같이 성적이 뛰어나고 우수한 학생들만 골라 장학금을 준다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아예 장학금을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잘하는 학생은 계속 신이 나서 잘할 것이고 나머지 학생들은 대열에서 떨어지면서 더욱 낙오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몇해 전 어느 기관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또 다른 기관에 장학금을 신청해서 또 받는 그런 경우도 본 일이 있다. 또 전학년 계속해서 받는 경우도 보았다. 우리 사회는 좀 부족한 학생들이라도 껴안고 함께 가야하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도 좋지만 문제가 있거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우리가 관심을 갖고 함께 가야 할 대상이다. 장애는 어려운 가정형편 뿐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한때 탈선의 길을 걸었던 경우도 일종의 장애라면 장애다. 어떤 이유에서건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씩씩하게 고난을 딛고 일어섰다면 이것은 인간승리다. 이들을 우리가 박수쳐주고 끌어안아 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는가.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수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이 얼마나 더 용기백배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열심히 공부를 하겠는가. 장학금은 골고루 주어질 때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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