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21세기에 살아남으려면

2009-09-26 (토)
크게 작게
정영휘 (언론인)

20세기가 열리던 1900년, 명치유신으로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부상한 일본이 노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에서 이긴 여세를 몰아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기치 아래 침략의 포문을 열고 있을 때, 조선왕조는 ‘20세기’라는 낱말조차 알지 못했다.

남들이 지폐를 사용하고 군화를 신고 다니는데 조선 사람들은 엽전과 짚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무지몽매한 나라였겠는가. 세계 진운의 물결이 불란서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아가며 몇 번의 세기를 넘나드는 동안 우리는 사대부의 명분 치레와 사색당쟁으로 날밤을 새웠다.
싸우고 또 싸웠다. 분열과 대립, 또 다른 재분열과 보복갈등 속에서 국가의 안위와 백년대계는 저만치 먼 곳에 있었다. 피탈(被奪)의 고통을 못 견딘 백성들은 등을 돌리고, 무(武)를 얕잡으며 문치주의에 빠진 위정자들은 국방에는 손을 놓고 있었으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욕된 시련을 겪은 것은 필연의 귀결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더 이상 역사의 지각생이 아니다. 나라 잃은 일제치하 35년의 혹독한 세월과 6.25 동족상잔의 피맺힌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기의 앞자락에 우뚝 선 한국인은 이제 역사의 선도자가 되었다. 콧대 높은 일본에서 비롯된 배용준의 욘사마 바람은 세계 곳곳에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열린 21세기는 동·서양이 없고 국경의 빗장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세계는 하나다. 하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민족과 국가, 주권과 경제주체, 문화와 전통의 아이덴티티는 분명히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땅에서 살건, 어떤 국적을 가졌건 한족(韓族)은 한족이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 속에 있고 세계는 한국인을 주시한다.

이럴 때 경제주권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국가 안보가 무너진다면 21세기의 세계열차는 우리를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낙오자로 버려두고 떠날 것이다. 또 하나의 소말리아나 방글라데시가 되어 60년대의 처참한 빈곤으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국방을 소홀히 하고 내부갈등으로 국력을 소진했던 조선조의 전철을 밟는다면, 용도 폐기된 공산주의의 질곡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한반도의 안보상황이다. 우리는 희망이 있는 민족이다. 마음만 다지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40년 만에 국민소득 100배의 기적을 일구어 냈고 IT분야와 조선 산업에서 세계
를 리드하고 있으며, 무역과 국민총생산이 10위권에 다가와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도취되어 노상 즐거울 수만 없다는 게 오늘날 우리네 속사정이다.선진국 대열의 진입을 한 발짝 앞두고 무거운 족쇄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국론은 극열하게 분열되어 대립을 거듭하고, 하도 많은 이해집단은 각기 제 목소리만 내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물론 개혁은 해야 한다. 진보적 발상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한 편, 전통도 중요하고 나라의 정체성도 바르게 지켜야 한다.
이 시점에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무엇보다 국가이익과 안보는 양보할 수 없는 지상의 과제라는 점이다. 오늘날 진보다 보수다 하며 우리처럼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나라는 없다. 더구나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세습 공산주의 독재국가(집단)와 대치하고 있는 처지에서 말이다.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국력을 어떻게 키울 것이며, 국민을 안전하고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방안을 찾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핵심 과제는 경제와 안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