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퀸즈식물원 재방문

2009-09-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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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내과전문의)

퀸즈식물원으로 가던 아침은 구름이 잔뜩 끼었던 그런 아침이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찌푸려 있었다. 병원 입원 환자 회진을 미리 마치고 브루클린 간선도로를 달이던 나의 마음은 흐린 하늘만큼 회색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잔치에 가는 사람처럼 타이를 매고 양복까지 입었지만 마음속에 드리운 잿빛생각을 걷어낼 수 없었다. 베토벤의 트리플 콘체르토 제2악장은 차안을 더욱 음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날 9월17일 아침은 우리가 2002년부터 시작한 퀸즈식물원을 위한 모금행사인 ‘코스모스의 밤‘ 개최를 취소하고 우편으로 뜻있는 분들에게 호소한 후 모은 기금전달을 위한 아침이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불기 시작한 경제 한파는 모금행사 개최 자체를 엄두도 내지 못하게 했다. 난국 속에 전전긍긍하는 한인들에게 시간과 돈을 내어 달라는 행위 자체가 염치없는 듯 하기도 했다. 그런 차제에 먼 미래를 얘기하는 퀸즈식물원 사랑과 지역사회 참여라는 깃발은 뜬구름 얘기가 될 것이 십상일거라 생각되었다. 식물원 사랑과 지역사회 참여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이 식물원안에 한국정원 건립이라는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퀸즈식물원은 퀸즈 심장부에 1964년도부터 39에이커에 자리하고 있다. 연간 30만 명의 방문객
이 도심의 한 가운데 있는 자연의 섭리를 만끽해 오고 있다. 거기에는 인종이나 종교, 피부색깔의 차이를 넘어 다함께 더불어 사라가자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우리 퀸즈식물원 한인후원회(회장 김철원)가 9.11 테러 다음해 발족된 근본취지가 그런 이유에서다.

식물원 정문을 들어섰다. 바로 앞길을 오가는 메인 스트릿의 분주한 거리와는 달리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인공으로 만든 조그만 개천을 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미리 주문해뒀던 커피 한잔을 마시며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여행으로 인한 시차를 커피 향에 풀고 있었다. 그리고 식물원장인 수잔에게 겨우 모은 5000달러를 김철원 회장이 전하고 식물원을 바삐 빠져나갔다. 로마가 하루만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한국정원이 설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거라고 되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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