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재범은 조금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2009-09-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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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취재 2부 차장)

10년전 쯤에 한글학교 교사를 한 학기 한 경험이 있다. 더글라스톤에 있던 상원사라는 절에서 운영하는 주말 한글학교였다. 기자가 맡았던 ‘청소년반’의 학생들 대부분이 참 말을 안 들었다. 부모님의 강요로 억지로 끌려나온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은 한글학교에 와서도 자기들끼리는 영어만 사용했다. 그 중 한 중학생 녀석이 한번은 그런 말을 했다. 자기는 나중에 한국에서 가수를 하고 싶다고. 한국말도 못하고 또 배우기도 싫어하는 녀석이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5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기자라는 신분으로 청소년 가요제 오디션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유명 아이돌 그룹의 산실인 한국의 SM 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는 행사여선지 정말 많은 학생들이 오디션장에 모여들었다. 인터뷰를 한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꿈을 “한국에서 가수로 성공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의외였던 것은 그 말을 하고 있는 자녀의 옆에서 흐뭇하게 웃음 짓고 있는 부모들의 얼굴이었다. “자기가 정말 원하고 재능이 있다면 굳이 반대하진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꽤 있었다.


얼마 전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5살난 딸이 ‘’슈퍼 쥬니어’의 ‘쏘리 쏘리’를 비디오로 보면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딸아이가 “한국 남자도 섹시하다”는 인식을 어렸을 때부터 갖는 건 아주 바람직하기에 한국 아이돌 그룹과의 ‘접촉’을 적극 장려하는 편이다. 그래야 나중에 한국인 사위 맞는 일이 더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넌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 코리안 아메리칸이야”라는 말도 자주해준다.
2PM (투피엠)의 리더였던 재범이 ‘우리나라 욕하는 나쁜 미국놈’으로 몰려 탈퇴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과 이곳에서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팬들과 재범 중 누가 더 잘못했는지 시비를 가릴 생각도 없다. 다만 10년 넘게 한글학교 교사로 기자로, 그리고 아빠로 이곳에서 아이들을 경험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있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고 한국말도 못하는 어떤 중학생이 한국을 자신이 비빌 언덕으로 인식하는 것, 어떤 부모들은 자식이 변호사, 의사 되는 것 보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되길 바라는 것, 또 어떤 아빠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정을 붙이는 방법이 될 까 해서 유치원생 딸에게 열심히 한국 가수의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모든 심정들을 재범에게 쏟아진 무수한 비난의 소리처럼 그저 “미국에서 누릴 권리는 다 누리면서 한국에서는 돈만 벌려고 하는 심뽀”라고 치부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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