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성이냐 변종이냐

2009-09-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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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언론인)

몇 해 전, 서울 가까운 도시에서 운동화 하나를 사기 위해 아이들이 줄을 서서 이틀 밤을 새운 적이 있어 화제가 되었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그처럼 미치게 했는가?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이 제품은 80개 밖에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80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에 대한, 이른바 희소가치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매스프로덕션, 현대 산업사회의 생산 원리인 대량생산의 틀을 벗어나 생산량의 제한, 한정판매라는 이벤트적 행사에서 아이들은 자기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찾고자 한 것이다. 남이 갖지 않은 나만의 것, 타자와의 구별이요 남들과의 차별화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상실한 자아를 되찾으려는 역발상의 몸부림이라고 할까.

배꼽에 구멍을 뚫고 혀 바닥에 대못을 박는 걸 취미라 하고 개성이라 즐기는 풍조를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그것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행위라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특별한 사람의 고급 취미라고 우쭐한 우월심리까지 작동하고 있음에랴.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보아야하는 많은 타인의 불편함이나 역겨움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으로 제약할 수도 없고 거리에서 붙잡아 말릴 수도 없는 게 ‘자유’라는 이름의 위력이다.
자유는 인간이 향유할 최고의 가치임엔 틀림없다. 다원화 사회에서 개성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 표현도 자유로워야 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하면서도 요즘 아이들의 행태가 너무 지나쳐 그 정도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가슴과 머리가 인간적 감성이나 지성과는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아서다.


내 안의 소질이나 장점을 계발하여 나다운 개성을 살림으로써 남과의 차별을 꾀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변종(變種)들. 자신의 인성이나 인간적 품위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인격도야 따위는 케케묵은 사고방식으로 치부해 버린다. 가치의 전도현상이 사고중추를 지배하고 있음이다.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외딸, 시험만 잘 보면 만사를 제쳐놓아도 말 할 사람이 없는 가정 구
조, 옳고 그름에 대한 엄격한 분별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제멋대로의 성장과정. 더 자라 성인이 되어서도 남과 타협을 모르고 극단적 돌출행위로 튀려고만 하는 변종들이 우글거린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자랄 때에는 이광수의 ‘사랑’이나 펄 벅의 ‘대지’를 밤 세워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곤 했었다. 문학이나 철학, 역사 같은 분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걸 공부라 여기며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시험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 답안지 메우는 수법과 컴퓨터 조작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는 생존전술 익히기에 여념이 없는 그 들에겐 순발력 있고 남보다 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겹쳐 이런 현상을 증폭시키고 있다. 물질만능 사고는 인간 경시현상을 낳고 무서운 범법 행위로 치달을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친구를 빨가벗겨 사진을 찍고, 돈과 물품을 빼앗고, 혹독한 폭행을 가하는 10대 소년 소녀들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다. 그들 하나 하나가 바르게 자라야 이 나라가 옳게 움직인다. 가정과 학교, 사회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나친 일탈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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