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식적인 법운용

2009-09-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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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뉴욕신광교회 목사)

사람이 사는데는 여러 가지 길과 방법이 있다. 바르게 공감대를 이루며 사는 삶을 우리는 상식이라고 한다. 모든 법령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고 판례라는 관례를 따라서 무리를 없앤다. 그래서 일찍이 법(法)자를 한문으로 풀어쓰면 물이 흘러가는 것에 비유를 했다.

얼마전 짧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 국민장과 국장이라는 두 번의 큰일을 지켜보면서 마음에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헌법학자가 아니기에 법령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상식이라는 것이 통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쓴다. 그리고 차제에 법령을 고치었으면 더욱 더 좋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국민장이나 국장 때는 온 국민이 상주되어 조의를 표하고 마음을 모아 슬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거행되는 예식에 문제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다. 그래서 여러 종교들이 나름의 예식을 거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세상을 뜨면 자기가 섬기며 믿었던 종교가 있을 것이다. 물론 무신론자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종교를 가진 자에게는 그가 생전에 의지하고 믿었던 종교에 따라서 예식을 거행하는 것이 상식이며 그 고인을 존경하는 한 예도 될 것이다. 만일 다른 종교 의식을 거행할 때 이미 지옥이나 천국에 가 있는 영혼이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인지.... 이런 예식 거행은 오히려 고인을 욕되게 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의 종교에 따라서 식을 거행하면 국민장이든지 국장이든지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 예식에 참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이런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는 기독교인이기에 불교식이 되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기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여러 가지 종교식으로 하면 오히려 자기 종교예식에 마음으로 참여하면 될 것이다라고 할 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섬기는 차원도 아니며 그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함께 슬픔을 나누며 조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인의 종교에 따라 행하는 것이 더 엄숙하고 슬픔을 나누는 길이 된다. 이제 우리는 지나친 형식에 매여서 상식도 깨고 더 나아가서는 고인에게 욕을 돌리는 일은 지향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집전을 하는 쪽은 짧게 하든지 길게 하든지 한 예식을 거행하기 때문에 자기식의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 불교인이 기독교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나, 기독교인이 불교예식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때 그는 불교인인데 기독교가 찬양도 하고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 오르내리는 일이 생기었다. 서로 다른 종교에 누를 끼치는 일이며 오히려 민심을 이반시키는 일이 되고 말았다. 종교예식의 거행과 한 국민으로 참여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많이 성숙했다. 경제뿐 아니라 인간이 사는 삶의 테두리를 정리하고 또 법을 운용하는 마음도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상식선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 서로에게 짐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인격을 고려하는 품위 있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우리는 한 줄의 법문이 중요하지만 시대의 다변화 속에서 해석의 다변화를 가져 왔으면 좋겠다. 특히 이런 마지막 보내는 절차에서는 본인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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