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케네디 왕조의 주춧돌

2009-09-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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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노동절이 끝나면 미국인들은 연휴를 바라보게 된다. 숲에서 일제히 울어대는 풀벌레소리는 태양이 작열했던 여름에 작별을 연주하는 코러스 합창단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매사추세츠주 성당에서 거행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장례식에서 첼리스트 요요마와는 가슴이 저려오는 슬픈 연주로 미국 반세기의 현대정치사의 막을 내리는 고별을 알렸다.지금 케네디 가문에서 고 케네디 상원의원의 후임을 이을 후계자가 없어 그의 빈자리는 쓸쓸하다. 케네디 상원의원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고인은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한 챔피언이었다” 라고 역설했다.

민주당 진보파의 수장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시간당 고용노동자 최저임금인상 법안을 공화당이라는 암초에 온몸으로 부딪치며 싸웠던 그의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의 열정의 흐름의 원류는 1848년 아일랜드에서 매사추세츠주로 이주해온 가난한 농부인 패트릭 존 케네디인 증조할아버지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5년 인류최대의 재앙으로 꼽히는 아일랜드 대기근(The great hunger)이 휩쓸었다.대기근의 원인은 감자가 말라버리는 전염병이었지만 치명적인 원인은 영국인 대지주들이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인들을 소작농으로 부리면서 착취한 경제수탈이었다. 감자가 주식이었던 아일랜드는 굶어 죽은 시체들이 산처럼 쌓였지만 영국인들은 아일랜드에서 수확된 수천 톤의 곡물
을 곡물 선에 가득히 실어 영국으로 날랐다.


이때 대기근으로 800만 명이 넘는 아일랜드 인구는 반으로 줄어든다. 200만 명이 굶어 죽고 살아남은 200만명이 아일랜드 엑소더스(Irish Exodus) 라고 불리는, 피눈물로 적시는 이민사, 즉 해외로 떠나는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아일랜드 인들은 관선(coffin ship)이라고 부르는 영국인들이 일부러 부실하게 만든 배에서 육지에 도달하기 전에 반 이상이 죽었다. 이때 죽음의 배
를 타고 겨우 살아남아 매사추세츠 땅을 밟은 아일랜드 농부는 케네디가의 이민 일세인 증조할아버지다.

그는 30대에 일찍 죽고 외아들인 조셉 케네디는 소년가장이 되어 막노동판에 뛰어들었고 그 후에는 술장사로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민자들을 발 벗고 나서 도우며 신망을 얻어 주 의회의 의원으로 정치입문을 하게 된다. 맨발로 뛰는 서민정치의 초석을 다진 것이다. 존 F. 케네디 아버지인 이민 3세대에 이르러서야 정규교육을 받고 정상으로 발돋움을 하게 된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증손자로 이어지는 공동운명체의 끈으로 4대에 걸쳐 100년 만에 정치명문가의 신화를 이룩한다.

케네디가의 노동자 생존권과 민권운동에 열정을 쏟은 원천의 힘은 할아버지 밥상에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후손들의 DNA에 각인되었다. 고 케네디 상원의원의 운구차량이 알링턴 국립묘지로 향하는 도로 주변에 몰려든 미국 시민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냉전시대에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거대한 꿈의 NASA를 설립했고 현란한 외교와 도전으로 반세기 미국현대정치사의 주역들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이다.

돈의 축적과 권력을 거머쥔 케네디가는 벼랑 끝 같은 모험심, 무절제한 여성편력과 개인적인 불행의 꼬리를 무는 20세기 자본주의 극치의 화려한 초 스펙터클 영상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그러나 케네디가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차별받았던 최하층의 아일랜드농부의 후예들이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아일랜드 농부들의 삶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은 반 고흐의 작품으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다.

우중충한 벽과 분위기의 어두운 방에서 흔들리는 노란 램프 아래 둘러앉은 다섯 명의 노동자들의 거친 손으로 감자가 담긴 접시로 손을 뻗고 있다. 어둠 속에서 상실감에 젖어있지만 강렬한 의지의 눈빛은 농부들의 치열한 삶의 표정이다. 눈부신 케네디 왕조의 주춧돌은 죽음의 배를 타고 미국에 건너온 아일랜드 농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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