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되돌아보는 9.11테러

2009-09-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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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명물인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붕괴됐다. 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미국의 보편적인 젊은이들이 가졌던 환상과 그들의 가치관도 함께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시절 뉴욕의 밤거리는 자정이 되어도 젊은이들의 인파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무엇 때문에 그 늦은 시간까지 거리에서 배회했을까? 그러던 뉴욕의 거리가 9.11 테러 이후부터는 저녁 6시만 되어도 매우 한산해졌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가진 가치관이 변한 것이다. 하나의 예로 9.11 테러가 일어난 후 미국의 명문 신학대학원 중의 하나인 프린스턴신학대학원의 지원율이 종전에는 2:1 혹은 3:1정도였었다. 그런데 테러가 일어난 후 거의 10:1 정도가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돈과 명예,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알고 살던 젊은이들이 가정의 진정한 가치와 인간의 참 행복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허상을 좇아서 살려고 했던 많은 미국인들의 의식구조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실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행복과 사랑이 어떻게 오는 것이며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시작으로 한국의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화해와 용서, 상생이라는 화두를 던져 놓았다. 이 화해와 용서, 사랑 그리고 상생이라는 단어를 올해처럼 우리가 많이 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이들의 죽음은 살아있는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던 인간성의 회복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환기시켰다. 동족간에 서로 돕고 가족간에 서로 사랑하고 이웃간에 서로 위하고 동료간에 서로 공생하라는 묵직한 주제를 남겨 놓고 그 분들은 가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 사회에서 이런 단어는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는 부부사이에나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증오하며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웃이나 친구 사이에도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면서 더불어 살겠다고 하는 분위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남의 잘못을 잘 용서하지 못하고 서로간에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민 초창기에는 어쩌다 길거리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서로가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다. 살기가 어렵고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사람들이 갈수록 더 이기적이고 더 경쟁적이며 더 포악해져 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잘못을 용서하고 수용할 만한 아량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힘을 모아 잘 살자고 하는 공동체 의식이나 공존의식은 없어지고 정이 메말라 황폐하고 삭막하기가 이를 데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9.11테러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찌 보면 미국의 오만에 대한 제 3세계의 일종의 반항인 것이다. 인간의 증오심과 적개심이 가져온 결과이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저지른 인간의 마지막 결단의 무서운 악행이다. 9.11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서로 공존하고 상생해야 하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체험했다. 3천명이 넘는 무고한 목숨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런 증오심의 결과는 비단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사건들도 일종의 테러이다. 우리는 조그마한 미움과 증오심이 자라 엄청난 사태를 몰고 오는 사건들을 보아왔다. 무고한 인명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해하는 연쇄살인이나 무차별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집단 총기난사 사건 등을 계속 접해왔다. 그 원인을 알고 보면 약자와 못가진 자의 마지막 저항에서 나온 것이다. 가진 자, 힘 있는 자가 약자를 배려할 때 이러한 테러는 없을 것이다.

나만을 위해서 타인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한다면 테러의 위협은 언제고 올 수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가 상처를 받는, 그래서 상대의 잘못만 섭섭하여 끝없이 보복과 아픔이 되풀이 되는 그런 슬픈 결과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무엇이 그런 엄청난 비극을 불러 왔는가를 겸허히 되돌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9.11테러 8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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