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보와 보수

2009-09-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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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미국 진보정치의 상징인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지난달 25일 77세로 운명하였다. 뇌암의 고통속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작금 미국을 뒤흔들던 논란과 쟁점의 중심에 서있는 의료체제개혁 입법안 통과를 걱정하며 그는 노심초사하였다. 자신이 죽어 한자리가 비게 될 상원의 민주당의석을 채울 후임자 선정이 늦지않도록 매서추세츠 주지사와 주의회 지도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집념의 노력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의 이같은 헌신과 노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병들어도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는 5천만 무보험 소외계층 미국시민들에게 의료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평생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의 40여년 정치인생의 한결같은 관심사는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진보적 가치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열어주겠다는 약속이었고 8선의 의정활동 내내 케네디 의원은 부유한 나라 미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갑부집안 출신으로 그의 입지는 자산계급이다. 그는 평생을 빈곤층 장애인, 이민자, 여성 등 소외계층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에 대해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는데도 보수적 공화당원으로 미국부유층의 대변자였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지금은 수백억 부자지만 출신은 가난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부유층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시장주의로 부자감세, 노동시장유연화, 기업규제완화등 친기업, 부유층 우대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정부의 금융개혁, 의료체제개혁 추진 등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보수층의 반발이 드세고 일본에서는 보수적 자민당 지배가 55년만에 무너졌다. 1990년대 이래 장기침체로 경제가 무너져 빈곤층이 확산되면서 진보세력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약발이 떨어진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열심히 추종하고 있어 지역간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의식계층사이에 보수와 진보논의도 전례없이 치열해졌다.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란 무엇인가? 한국의 대표적 진보정치인 중 한 사람인 유시민(참여정부시절 보건복지부장관)씨가 최근의 저서에서 밝힌 진보와 보수의 뜻풀이가 재미있다. 그에 따르면 진보는 당위(當爲.sollen)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存在.sein)를 추종한다. 진보는 이 세상에 아직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설정하고 그의 실현을 위해 싸운다. 예컨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같은 것. 진보의 사고방식은 연역적 구조를 가진다. ‘인간은 평등하다’와 같은 추상적 공리에서 시작해 구체적 전략과 전술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는 논리체계를 만든다. 한 곳에서라도 의견이 갈리면 치열하게 싸우다 분열하여 망한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시절 어렵게 집권한 진보세력 사민당과 공산당은 이론이 갈려 내부분쟁하다 히틀러 파시스트 세력에게 망했다. 냉전시기 중.소간의 이념분쟁도 이런 예다. 이에 대해 보수는 현실을 자연의 질서로 인정하고 지킨다. 어떤 질서든 상관없다. 전제군주제든 개발 독제든 심지어 천황제도...
경험주의적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며 철학과 견해는 중요하지 않다. 이해관계만 일치하면 똘똘 뭉친다. 단일 위계질서를 수립하는 줄서기 문화와 냉철한 이해타산 능력. 그러나 이해가 틀어지면 곧 부패하고 망한다. 물론 진보편에선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지만 정곡을 찌른 그의 형안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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