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팔색조의 고향, 지심도

2009-09-02 (수)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팔색조는 여덟 가지 색깔로 치장을 한 작은 철새이다. 팔색조는 변신을 잘하는 카멜레온도 아니고, 대낮이 아닌 밤을 주로 이용하여 날아들지만 변덕을 부리는 새도 아니다. 그저 몇 천리 길을 오가는 힘없는 작은 몸집이라 보호색으로 치장을 했을 뿐이다. 추위를 싫어하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추운 겨울이 한반도를 덮기 전, 가을에 주로 동남아시아인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으로 날아가 살다가 한반도에 봄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지막 동백꽃이 다 질 무렵인 오월 십일에서 오월 이십 오일 사이에 다시 찾아온다. 연어가 바다의 회귀성 물
고기라면 팔색조는 하늘의 회귀성 조류이다. 태어난 곳이 그리워서 태어난 곳을 찾아온다.태어난 곳은 고향이 아니던가? 때묻은 흰 광목을 정성스럽게 빨아 입고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노동을 팔러 왔던 초기의 이민자들은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가자, 거리로는 점점 더 멀게 느껴지나 마음으로는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고향에 가서 묻히고 싶다고 한숨 섞인 절규를 토해내곤 했
다.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삶은 그리움보다 절실한 것일까? 삶을 위해서, 아니 생활의 개선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고 우리도 고향을 떠나 이민을 택했던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도 떠나면 고향이 되고, 내가 살던 곳도 떠나면 고향이 되며, 내 나라도 떠나고 나면 고국이 된다. 마음의 고향은 어디일까? 92세에 노환으로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빨리 가고 싶다고 수시로 말씀을 하시었다. 빨리 가고 싶다던 아버지의 고향은 어디일까? 아버지를 홀로 두고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일까? 아버지의 일기를 보니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싶다고 적혀있으니 나는 아버지의 고향은 어머니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죽음을 말할 때 “passed away” ”지나갔다“고 한다. 지나간 사람에게 무슨 고향이 있겠는가? 지나가면 그뿐이지! 육신은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마음은 사랑하며 기대고 살던 사람과 선조의 선조께로, 그리고 영혼은 생명을 주신 마음의 고향 하느님 앞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필연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돌아갔다“는 말을 쓰는 것 아니겠는가! 나의 고향은충청남도 공주의 계룡산 산자락 밑 하대리이고, 팔색조의 고향은 거제군 동부면 학동리의 노자산 남쪽 다대리에 걸쳐있는 산등선 경사진 곳의 활엽수림이다.

팔색조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팔색조는 해마다 학동리의 노자산 남쪽, 고향을 찾아오고 나는 어머니가 누워 계신 선산을 해마다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따스하던 어머니 품에 잠시 안겼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고, 팔색조는 다대리 숲에서 알을 낳고, 알에서 나온 어린 새끼를 얼마간 키우다가 추위가 닥치기 전에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으로 잠시 이사를 했다가 다음해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온다. 떠나고 나면 그리워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팔색조가 태어나는 곳은 알겠지만 어디에서 날개를 접고 죽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눈에 보이면 알고,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야속한 습성, 사라지고 나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 숫자가 별반 많지 않아 세계조류학계에서 지정한 희귀종 조류로 분류를 해 놓았으니 사람이 숫자로는 많아도 하느님이 지정한 우주의 희귀종인 인간과 같이 팔색조는 팔색조대로 그 값어치가 큰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