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 3자의 피해

2009-09-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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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빛과 사랑’ 발행인/변호사/목사)

금년 봄에 집 앞에 조그마한 소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7월 20일 오랜만에 잔디 풀도 뽑고 나무에 물도 주고 특별히 새로 심은 소나무에 물을 많이 뿌렸다. 가지사이에 죽은 솔잎 같은 것이 둥글게 뭉쳐있음을 보고 생각 없이 떼어내고 보니 아니 이게 새 집이 아닌가! 그 속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 참새 두 마리가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다시 있던 자리에 올려놓았다.
새집에 너무 물을 많이 뿌렸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그런데 다음날인 21일, 새끼들이 나무 밑에 내동댕이쳐 있지 않는가! 어미새가 떨어진 새들을 옮기려고 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 마리는 이미 죽어있었고 한 마리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새 집 구멍을 떼우고 비닐로 바깥 바닥을 깔고 산 새만 집에 넣고 다시 있던 자리에 올려놓았다.

저녁에 살금살금 나무로 다가가니 어미 새가 새끼를 품고 있다가 놀라 날아간다. 나의 우둔한 행위로 아기 새가 죽었음을 애석해 했는데 남은 새만이라도 어미 새가 돌보고 있는 것을 보고 한층 안도가 되었다. 22일 아침에 나무에 다가가니 어디에서 쏜살같이 오는지 옆 나무에 와서 짖어댄다. 그래도 나는 가지를 들치고 새 집을 보니 새끼 새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저녁때는 아침 보다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다. 23일과 24일에도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나무에 다가가면 어미 새는 급히 나타나서 요란하게 짖는다. 3-4일 만에 아기 새는 온몸과 날개에 털이 많이 나고 활발하다. 2-3일만 더 있으면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25일 아침 가보니 어미 새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짖어댔던 어미 새가 어디로 간 것인가? 가지를 재치고 보니 새도 없고 집도 없다. 풀 줄기들만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아기 새는 날아간 것이다. 날아갈 때 어미 새가 집을 허문 것 같았다.


한사람의 신중치 못한 행위로 아기 새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갔다. 우리 집 처마에는 매년 새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부양한다. 나무에 물을 주기 전에 사전 조사를 했었어야 했었다. 후회하여도 이미 때는 늦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나무에 물주는 것만 좋은 것으로 생각했지 그 속에 어린 새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적당한 물을 주었다면 7월의 뙤약볕에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 혜택을 주었을 텐데 너무 많은 물을 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었다. 자동차에 동승한 승객이 다쳤다. 보험에서 보호받는 3자의 경우다. 반대로 타인의 물건을 구입했는데 그것이 훔친 물건임이 밝혀졌다. 마땅히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며 보호받지 못하는 제3자가 된 셈이다. 아기 새는 나와 나무사이에서 보호받지 못한 제3의 피해자가 되었다.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젊은이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다. 오늘의 세계는 기아와 질병으로도 수많은 어린생명들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패권다툼 때문에 선량한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 것을 한국정치사에서도 보아왔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부싸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측은 누구보다도 제3자인 아이들이다. 가정의 평화가 없으면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친구 간에 한 우연한 행동과 말이 제3의 친구에게 큰 피해가 가는 예는 너무나 많다. 나의 말, 나의 행동이 아무런 관계없는 제3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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