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단순함과 순수함

2009-08-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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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은 내가 아는 것 보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 살면 살수록 더 아리송해지는 것이 세상인 것만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를 닦으러 산으로 들어가는가 보다. 그렇지만 산엔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산 속에 들어가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닫는다면 누구인들 산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책을 보면 볼수록 더 모르
는 것이 많아지는 것도 무슨 이유일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을 살아오는데 사람의 속을 더 모르겠으니 이 또한 무슨 연유일까.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 나 자신도 가면 갈수록 나 자신을 모르겠으니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아침저녁으로 보는 나무들과 그 나무들 사이를 오가며 지저귀는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나무들과 새들의 단순함을 본다. 단순함. 그런 것 같다. 사람이란 너무 복잡하다. 세상도 단순하지가 않다. 그러기에 살면 살수록 더 모르고 어려워지는 것 같다. 세상이 복잡하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며 살아도 사람의 속을 더 모르는 것 같다.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동물은 없다. 사람보다 더 욕심이 많은 동물도 없다. 사람보다 더 복잡한 뇌를 가진 동물도 없다. 사람보다 더 감정이 미세한 동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의 세상보다 더 얽히고설킨 세상을 볼 수 있는가.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사람의 세상만큼 더 복잡
한 세계는 없다. 우주의 크나큼과 미생물의 삶을 알고 살아가는 동물이 사람 말고 또 어디에 있는가. 우주와 인간과 자연을 두고 펼쳐지는 세상 학문을 그 어느 동물들이 흉내 내겠는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전문분야의 박사들이 사람의 세상 외의 동물의 세계에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을 연구하는 다른 동물들이 있는가.


사람만이 사람을 연구한다. 사람만이 자연을 연구한다. 사람만이 우주의 비밀을 벗겨보려 한다. 사람만이 현미경으로 보아야 볼 수 있는 미생물을 연구한다. 사람만이 예술을 한다. 사람만이 도덕을 논한다. 사람만이 종교를 믿는다. 사람만이 죽음을 인지한다. 사람만이 복잡한 세상을 연구하며 더 잘살아가기를 바란다. 정치, 사회, 문화, 종교, 역사, 지리, 천문학, 의학, 신학, 문학, 음악, 미술, 체육, 심리학, 철학 등등. 모든 학문들. 모두 사람을 위해 있다. 사람의 모르는 것들을 채워주려 있다. 그러나 사람은 배우면 배울수록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사람의 끝이 없는 탐구의 욕심이 사람의 눈을 가린다고 해야 하나.

사랑도 그렇다. 사람보다 복잡하게 사랑을 하는 동물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다른 동물들은 종족을 번식하려하는 자연 순리에 따라 짝지어 사랑도 하고 새끼도 낳는다. 새끼를 알고 돌보는 본능은 사람과 같다. 다른 동물은 번식 외의 다른 사랑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온갖 쾌락을 위한 사람의 복잡한 사랑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인식도 사람만이 인지한다. 그것도 청년이 된 후 성인으로서 철학을 알고 난 후의 일이다. “왜 태어나 왜 죽나?” 하는 철학적 질문을 다른 동물들이 할 수 있겠는가. 또 사람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태어나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고 설파하고 있다. 결국 세상과 사람의 끝은 죽음이 아니란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도 복잡한 세상에 사람은 태어나는 걸까. 그러나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늘의 섭리다. 하늘의 뜻이다. 보이지 않는 외부의 세상만큼 더 큰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 마음의 세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이치만 깨닫는다면 세상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도 한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마음의 이치란 나무와 새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 속의 단순함과 순수함에 있지 않을까. 또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 속에 마음의 이치가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나이가 들고 세상살이를 많이 할수록 세상을 모르고 더 알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음에 때가 끼고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수수께끼 같은 사람의 마음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비우고 살아야 될 것 같다. 욕심도 비우고, 야망도 비우고, 사랑도 비우고. 오늘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배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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