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로 일기를 쓰는 이유

2009-08-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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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옥(MoMA)

돌맹이에 물로 일기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 내용이 물과 함께 모두 말라 버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매일매일 돌 표면에 일기를 써내려 갔다. 그의 이름은 송동(宋冬). 현대 중국 미술계에서 가장 창조적이며 개념 예술가로 유명하다. 개념 예술가는 이념(idia) 뿐만 아니라 물질(material)에도 활발한 움직임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원칙이다.1966년 중국의 문화혁명이 일어나던 바로 그날 저녁에 태어난 송동은 종이나 잉크없이 낭비하지 말자는 구절을 허공에 연습을 하던 영상에 착안을 얻어 한 여인이 50여년간 단 한오라기도
버리지않고 몰아놓은 잡동사니를 인생의 예술품으로 집결시켜 보겠다는 구상을 했다.

1938년 북경에서 태어난 이 여인은 방 하나짜리 조그만 집에서 남편과 두남매 그리고 거의 천장에 닿을만큼 빼곡히 둘려 쌓여있는 살림살이에 묻혀서 근 50여년을 지탱해 왔었다. 작고 큰 낡은 옷들, 책, 밥통, 젓가락, 휴지, 구공탄, 플라스틱 봉지, 구구, 인형, 단차, 의자, 이불 등등... 쓰다남은 바늘 하나 버리지 않고 그냥 쌓아놓고 살았다. 낭비는 금물이라는 혁명 구호속에서 빨래 비누를 배급받아 콩알만큼 달아질 때까지 쓰다남은 비누조각들은 너보다 나이가 많다고 아들에게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낡은 비누의 포장지도 꾸깃꾸깃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여인은 송동의 어머니였다. 사랑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슬픔은 극치를 달했고 이를 억제하는 치료가 되는 듯 어머니는 더욱 더 쓸데없는 물건들을 끌어 들였으며 조그만 집은 점점 쓰레기 더미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아들이 마침내 제안을 했다. 이 쓰레기들을 어머니와 함께 예술작품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하나도 버림없이 차곡차곡 정돈해 보면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송동의 아이디어는 드디어 결실을 맺어 어머니를 비롯 아들, 딸, 며느리가 모두 힘을 합쳤고 함께 살던 집의 외곽을 선두로 셀수도 없이 많은 보따리들이 광주 비에날레 등 유럽전시를 거쳐 지금은 모마(MoMA) 2층의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성황을 이루고 있다. ‘WASTE NOT’ 낭비하지 말자는 제목을 부침으로써 아들은 자기가 자란 어머니의 살림집 전체를 뜻이 담긴 작품으로 탄생시켰던 것이다.송동은 전시벽위에 가슴 뭉클한 밝은색 네온싸인을 걸어 놓았다 “아빠, 염려 마세요, 엄마와 우리는 잘 있어요” 송동의 어머니는 MoMA전시를 못보고 1월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 떠난 동기가 또한 뭉클하다.

아들과 기획하는 대단한 전시를 위해 생전 처음 모든 소유물을 품안에서 떠나보낸 뒤 북경의 조그만 공원옆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던 어느날 산보를 나갔었다. 어디서인가, 나무위 빈둥지에서 짹짹 우는 상처입은 새소리가 들려 이를 구하려 사닥다리를 오르다가 그만 허공을 잡고 상처입은 새처럼 외롭게 떨어지며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손을 잡은 이 가슴 적시는 전시는 9월21일까지 계속된다.이것은 한 어머니의 기록인 동시에 반세기에 걸친 중국의 문화혁명 그리고 모든 물질은 영원하지 않다는 상징적인 기록을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이 역시, 돌맹이에 물로 적어 놓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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