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상동의 카메라 토크 - 화장실의 엔셀 아담스

2009-08-05 (수) 12:00:00
크게 작게
얼마 전 특별한 활동 없이 사진생활을 즐기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동안의 안부와 지난 이야기 끝에 다음 주 요세미티로 출사계획을 잡고 있는데 오랜만에 꼭 같이 출사를 나가자고 청한다. 이것저것 밀려 있는 일들이 있는 터라 떠날 형편이 되지 못했고, 더구나 목적지가 요세미티라는 말에 주저 없이 적당한 이유를 붙여 섭섭하지 않도록 사양하고 헤어졌다.

요세미티, 웅장한 산세와 구석구석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냥 여행이라면 몰라도 사진을 위한 출사라면 별로 자신이 없다. 내 머리 속의 요세미티는 엔셀 아담스(Ansel Adams)라는 고유명사와 이음동의어 정도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웃집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그 곳에 살며 요세미티를 그려낸 엔셀 아담스의 대작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엔셀 아담스의 렌즈가 앵글을 맞추었을 듯한 구석구석에 감히 내 카메라를 들여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 곳에서 먹고 자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계절과 빛과 함께 호흡하며 맞춰진 앵글을 단 몇 시간의 운전과 하루 이틀의 숙박으로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것 같다.


조리개의 역할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카메라는 여학생들 앞에서 폼 재는 기구로 사용하던 시절, 한 장의 흑백사진이 감동적으로 보여진 기억이 있는데 나중에서야 그 사진이 엔셀 아담스의 작품인 것을 알았다. 그랜드 캐년이었다고 기억되는데 아마도 내가 느낀 감동은 사진의 작품성이 아니라 그 장엄한 그랜드 캐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식했던 눈에도 심도가 깊고 계조가 살아 있는 금세기 최고의 흑백 사진가의 작품 속 그 무엇이 보였을 것이다.

명작은 지식이 없어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엔셀 아담스의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다. 질 좋은 종이에 잘 인쇄되어 웬만한 포스터를 파는 곳이라면 어렵지 않게 적은 비용으로 구할 수 있다. 대가의 작품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흔해 값어치가 조금은 떨어져 보인다.

언젠가 허름한 식당의 화장실에 걸려 있는 엔셀 아담스의 복사본을 보며 과연 이 장소에 걸려 있는 이 작품이 감상용일까 장식용일까 그도 아니면 지저분한 벽 가리개쯤일까? 혹시 변기에 걸터앉아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혼신의 힘을 쏟으며 만들었을 이 작품을 같은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쏟으며 감상하라는 식당 사장님의 깊은 뜻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며 돌아 나오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사진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옆집이 이사 가며 남겨놓은 것인데 화장실 벽의 비가 샌 얼룩이 보기 싫어 걸어 놓았단다.

엔셀 아담스, 1902년 태어나 1984년 세상을 떠난 금세기 최고 흑백사진의 대가이다. 흑백 사진도 미술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사진을 독창적인 예술의 분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고, 흑백사진의 촬영부터 인화까지의 중요성을 존 시스템의 이론으로 완성시켜 흑백사진의 교과서라 해도 조금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의 작품은 처음에는 조금은 단순한 듯 하지만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 전체에 흐르는 감동은 컬러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엔셀 아담스의 작품은 다시 한 장의 필름으로 바뀌어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상점에서 식당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만나는 엔셀 아담스의 작품들이 대부분 복사본이지만 값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없이 조금은 귀하게 대접받고 장식용이 아닌 감상용으로 걸려져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