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인회 선거에서 생각나는 일

2009-03-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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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고문)

이번 뉴욕한인회장 선거는 유난하기도 하다. 막상막하의 세후보가 각축전을 벌이면서 선거운동이 치열하고 선거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후보와 운동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각종 행사장과 교회, 식당, 병원 등 한인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도는 것은 기본이고 후보 색깔별로 티셔츠를 입은 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면서 전단을 나누어주는 것이 미국선거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식 선거운동이다. 한인타운을 도배질 하다시피 한 선거포스터와 대형 현수막도 또한 그렇다. 각 후보가 등록비 6만 달러에 선거운동비용을 합치면 수십만 달러씩 들것이라는 입소문이다. 이 선거운동이 미국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고 중국계 방송과 뉴욕타임스까지 취재하였다고 하니 한인회장 선거가 명물이 된 셈이다.

한인사회에 있는 많은 단체들이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활동이 없다가 선거 때만 되면 이렇게 선거운동이 치열한 경우가 많다. 뉴욕한인회도 평소에 선거 때처럼 활동이 활발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선거 때만 요란한 것은 한인단체들 뿐만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선거 등 모든 정치판의 선거가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정치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선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선거에 큰 이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거운동이 과열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관계가 선거결과에 따라 크게 갈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선 결과도 부유층과 서민층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한국의 대선 결과가 지역간 또는 좌우 이념세력간의 이해관계 영향을 주는 만큼은 크지 않다. 그러니 한국의 선거운동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거운동이 과열하면 반드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선거가 끝난 후에 부정선거논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선거로 인해 생긴 앙금으로 지역간, 이념간, 계층간 분열대립이 격화될 수도 있다.

한국은 앞으로 선거에서 해외동포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해외동포의 참정권을 제한한 것이 형평에 어긋난다고 결정함에 따라 이루어진 해외동포들의 투표권은 해외 한인사회가 한국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이 투표권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가. 부정적인 측면을 볼 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가장 큰 부작용은 외국에 이민한 해외동포들이 거주국에 뿌리를 내리고 그 사회와 국가에서 영향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본국의 참정권이 이 과정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미한인의 경우 해외공관의 외교관이나 지상사 직원, 유학생등 일시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부재자 투표로 참정권을 행사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주권자는 영주라는 말 그대로 미국에 영주하는 사람이며 예비 시민권자이다. 그러므로 미국에 세금을 내고 미국의 법질서 아래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관점에서 볼 때 참정권은 가장 큰 권리이며 납세는 가장 큰 의무이다. 해외동포들이 한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참정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형평에 어긋
나는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납세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참정권을 갖는다면 한국내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형평에 어긋나는 사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세계각국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을 상대로 유권자명부 작성, 선거운동, 투표관리 등 업무의 복잡성과 문제점이 많을 것이고 불법선거운동에 대하여 한국의 사법절차에 따른 사전과 사후처리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방식대로 재미한인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된다면 박빙의 승부로 정권의 향배가 결정되는 한국선거에서 한인들의 표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인사회를 향한 선거운동이 과열할 소지가 매우 크다. 그렇다면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금도 수면 밑에 깔려있는 지역감정, 이념대결이 노골화될 것이고 영주권자와 시민권자간의 위화감가지 가세하여 이 좁은 한인사회가 심각한 분
열을 겪게 될 우려가 크다.

미국에 벌써 한나라당 간판이 걸리고 민주당도 뒤따를 기세라고 한다. 한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 한국에 가서 금배지를 달려고 하는 사람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래저래 한국정치 바람이 불게 될 것인데 이번 한인회장 선거가 과열하는 것이 이런 사태와 무관한 것일까. 해외한인들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이 한인사회에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어떤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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