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험대에 오른 개성공단

2008-11-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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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경색되어 온 남북 관계가 드디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오는 12월 1일부터 개성 관광을 중단하는 등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교류 관계를 끊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됨으로써 막대한 피해를 본 현대아산을 비롯한 업계가 또 비상에 걸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관심이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개성공단에는 한국이 철도, 도로, 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에 1조원을 쏟아 부었고 공단 입주 회사들의 시설설비 투자가 4,000억원이나 들어갔다.

현재 88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이 공단에는 지금도 많은 공장들이 건설되고 있어 투자금이 계속 들어가고 있는데 만약 북한이 공단을 폐쇄한다면 무형의 경제적 손실까지 합쳐 한국측의 손실 규모는 2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북한이 개성공단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런데 경제적 측면에서도 북한이 개성공단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얻는 수입은 근로자 3만5,000명의 임금을 포함하여 연간 2,500억 내지 3,000억원 규모인데 미약한 북한 경제에서 이 금액은 무시하지 못할 액수인 것이다. 개성공단의 폐쇄는 이러한 경제적 손해 뿐 아니라 국제여론의 비판과 대외 신인도 하락이라는 위험도 따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마지막 카드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초 남북관계의 경색은 노무현 정부와 대북 자세에서 차별화를 보인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불가피한 결과였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가 이번 조치의 직접 원인이 되었다.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체제를 훼손하는 일인데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한국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이명박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관한 발언 등이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체제가 다른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고 이럴 때마다 북한이 강경 모드를 취한다면 남북간 협력사업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남북의 교류협력 사업에는 북한에 또다른 장애가 있다고 한다. 남북간의 경제 교류에는 인적 접촉이 불가피하게 수반되는데 이 때문에 황색바람, 즉 남한의 자본주의 풍조가 북한사람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북한당국은 경계하고 있다. 일부 북한인들은 이미 한국제품 수준에 대해 알고 있으며 중국을 통해 반입된 한국 비디오를 통해 한국의 생활상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남북교류 협력을 하지만 이런 사태가 방치될 경우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때마침 올해는 북한의 농업 생산이 풍작을 이루었고 해외의 지원이 늘어나 식량난 걱정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 미국 대선에서는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공약한 오바마 후보가 당선됐다. 이러한 내외의 사정 변화는 북한의 대남정책에 어느 정도 신축성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쉽게 생각했던 합작사업을 하나씩 대남 압박용으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지난 해 노무현 정부가 급조하여 추진한 제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남북협력사업을 합의했다.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구축하고 해주 경제특구를 개발하고 북한의 광물 지하자원을 공동 개발한다는 것 등이다. 또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는 러시아의 천연개스를 북한에 개스관을 설치하여 남한까지 수송한다는 계획이 합의되었다. 이와같은 사업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관광, 개성공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대규모 사업이다.대개 외국에 자본을 투자하여 사업을 할 때는 그 대상국의 정치와 경제제도가 본국과 갈등관계가 없어야 안심하고 투자 또는 사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안정된 관계 속에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하다가도 혁명이나 정변으로 인해 정치경제 체제에 변혁이 일어나서 외국 투자가와 사업가가 빈 손으로 쫓겨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하물며 체제가 다를 뿐 아니라 언제 어떻게 대결 상황으로 치닫을 지 알 수 없는 남북 관계에서 경제교류 협력을 한다는 것은 정치적 의미는 매우 크지만 사업적으로는 투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남북간에는 앞으로 수많은 교류협력 사업이 계획되어 있지만 이번 사태로 볼 때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북한과 교류협력사업을 하면 할수록 대남 압박용 카드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앞으로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를 예의 주시하여 그 결과에 따라 모든 대북 경제교류 협력사업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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