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악관 고지 탈환

2008-11-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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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11월 중순 오후, 오바마 당선자 부부가 탄 검은색 리무진이 백악관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풀밭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직 대통령 부부의 환대를 받는 장면이 생중계방송으로 숨가쁘게 진행되었다.오바마 당선자가 부시대통령과 함께 오벌 오피스로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은 백악관에 신선한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한편으로는 워싱턴포스트지에 ‘퇴직한 백악관 하인(Butler)’이라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백악관의 부엌에서 접시를 씻고 은그릇을 닦으며 34년 동안 트루만대통령으로부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여덟 대통령을 거치고 퇴직한 알린(Allen)이라는 흑인 노인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흑인이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던 1952년 백악관 부엌에서 일을 시작하여 1986년 퇴직했다. 2차대전의 종말과 냉전의 종식까지 격동의 소용돌이를 관통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의 집의 거실과 벽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이 가득히 붙어있는 작은 박물관이다.부엌에서 일하던 그가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행정부의 수반으로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에서 집무를 수행하는 꿈같은 날이 오리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는 백악관을 지은 일꾼들도 흑인노예였고 1801년 미국 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그의 소유 흑인노예들 10여명을 백악관에 데려와 잡일을 시켰다.흑인 민권운동 역사는 불꽃처럼 열정을 태우다 숨진 마틴 루터 킹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프레데릭 더글라스(1817~1895)는 흑인민권운동의 초석을 다진 노예 폐지운동가이다. 그는 메릴랜드주 대농장 지주의 노예로 태어나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이 때 노예 소유 지주들은 노예들이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소유주들은 몰래 성경을 훔쳐 읽다가 들킨 노예들을 쇠가죽으로 때려 죽음에 가까운 가혹한 형벌로 다스렸다.그러나 그는 지식에 대한 타오르는 갈증으로 백인 어린아이들에게서 몰래 글을 익혔다. 흑인이 글을 배운다는 것은 목숨을 건 생존투쟁이었다.훗날 그는 농장에서 극적으로 도망을 친 후 노예해방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흑인 노예폐지운동가 지도자로 변신하였다. 그는 뉴욕주 흑인 노예제 반대 신문을 창간하였고 그의 자서전은 노
예의 삶을 통렬하게 고발한 미국문학의 빛나는 기념비가 되었다.

남북전쟁 때는 링컨대통령의 자문위원으로 활약했고 전쟁이 끝난 후 1865년 링컨의 재선 축하연회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백악관 정문에서 경비에게 쫓겨났으나 링컨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참석할 수 있었다. 흑인금지구역인 백악관에 발을 들여놓은 첫번째 흑인 시민이었다.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순간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극적인 인간 드라마가 펼쳐
지고 있었다. 한 중년 흑인남자의 핏발이 선 붉은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뺨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TV에서 비추어졌다. 그는 온 몸에 전율을 느끼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이라고 목이 메인다.

반대로 한편에서 남부 캐롤라이나에 사는 백인 중년남자는 흑인이 백악관 주인이 된다면 하얀 백악관을 검은 색으로 페인트칠 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생애 최고의 악몽의 날이라고 얼굴을 붉히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시골의 한 백인 할머니도 오바마의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듯한 충격을 받았으며 수치의 역사라고 피부색깔에 대한 혐오의 독설을 거침없이 퍼부었다.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에 표를 던지지 않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아직도 인종차별 갈등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러나 찢어진 상처를 뚫고 새 살이 돋아날 것이다.이제는 거대한 미합중국을 건국하는 동안 흑인노예 착취의 뼈아픈 역사가 남긴 흉터를 지울 때가 아닌가?
흑인이 노예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시민으로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 백악관 문턱은 하늘을 오르는 계단보다 더 높고 아득했다. 백악관 고지 탈환은 정치야망을 꿈꾸는 한 흑인의 신화가 아니다. 흑인민권운동가들의 긴 투쟁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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