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약속에 대하여

2008-11-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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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버락 오바마가 선거 유세 중 많은 공약을 쏟아놓았으나 민심을 사로잡은 것은 결국 세 가지의 약속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첫째 경제적으로 뒤진 사람들을 끌어올리겠다는 약속, 둘째 많은 피를 흘리는 방향 없는 이라크 전을 신속히 종식시키겠다는 약속, 셋째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부정적 감정을 호감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해묵은 난제이니 성취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다. 재임 4년 동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력을 다하여 약속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는 역사에 남는 위대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 인격 척도의 기본이 약속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신용도 약속을 지킴으로 얻어진다. 한동안 ‘코리언 타임’이라는 부끄러운 말이 유행되었다.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을 가리켰다. 약속한 시간에 늦게 가면 남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부도덕한 행위이며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교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예배나 회의 같은 공중집회를 늦게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에 지장을 일으킨다는 미안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계약사회에 산다. 사방에 약속을 한 상태인 것이다. 결혼도 약속이다. 그래서 예식 때 반드시 결혼서약을 한다. 그것은 여러 증인 앞에서 행한 신성한 약속이며 쉽게 깨뜨려서는 안 된다. 취업도 입학도 가정과 사회, 회사와 학교와의 약속이다. 비즈니스는 많은 약속 속에 진행된다.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엄숙하게 지키는 것이 소위 신사숙녀이고 인격자이다.


나는 뉴저지 남쪽의 정신박약자 시설을 가끔 방문하였다. 한번은 P군이 캔디를 달라고 했다. “오늘은 없지만 다음에 올 때 주겠다.”고 가볍게 대답하여 넘겼다. 그러나 다음에 방문했을 때 캔디 가져가는 것을 잊었다. 소년은 아주 원망스런 음성으로 “너는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세 번이나 되풀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능이 한계선(IQ 60-80) 정도의 아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지능이 낮은 아이이므로 얕보고 있던 잠재의식이 약속을 함부로 하고 약속을 쉽게 어긴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기억할 뿐만 아니라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3마일이나 되는 근방 쇼핑센터에 다시 나가서 캔디를 사왔다. 상대가 순진할수록 약속을
어긴 후유증은 더 크다. 그러기에 어린아이들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퍼체이싱’(Purchasing)지에 구매자의 마음을 잡는 방법에 대하여 판매원들의 의견조사가 나왔다. 으뜸이 65%로서 정직하고 약속을 잘 지킬 것, 둘째가 물품에 대한 철저한 지식, 셋째 구매자에 대한 정규적 접촉, 넷째 판매기술교육의 순서이다. 돈을 벌려면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품 판매뿐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같은 잡지가 판매원의 실패 원인도 조사하였는데 성공의 원인을 그대로 뒷받침 하고 있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약속 남발이다. 몇 년은 틀림없이 쓸 수 있다느니 하는 약속을 함부로 하는 따위이다. 판매원들의 용어로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Good news bearer)라고 한다는데 구매자에게 덮어놓고 좋은 약속만 쏟아놓는 방법은 오히려 신용을 떨어뜨린다. 다른 실패의 원인도 모든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둘째는 물건에 대한 지식 부족, 셋째 너무 강요하는 행위, 넷째 준비 부족, 다섯째가 빈약한 상황 판단(점심시간에 찾아가는 행위 등)의 순서이다. 좋은 말이라도 책임지지 못할 말을 너무 쉽게 하면 실패한다. 한 성서학자는 성경에 하나님이 인류에게 하신 약속이 366회 나온다고 분석하였다. 구약(舊約)이란 예수 이전에 주신 약속, 신약(新約)이란 예수 이후의 약속을 가리킨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읽는 것이고 설교란 하나님의 약속을 해설하는 것이며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믿음이 깊다 혹은 약하다는 말은 신구약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농도의 차이를 가리킨다.

뉴욕타임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실었다. 뉴욕 햄스터드에 사는 마이크 콘웨이 씨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실명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다. 모금운동을 벌려 시각장애인에게 ‘길잡이 개’(Guide dog)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그는 뉴져지 주에서 메인 주까지 백일 동안 도보행진을 하여 3만 달러를 거두어 길잡이 개를 선사하였다. 누구나 스스로의 약속이 있다. 그것을 희망이라고 일컫는다. 이 약속을 지킨 수위(水位)가 소위 그대의 성공과 실패의 수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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