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검정 스파게티와 가을의 밤

2008-11-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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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늘 서글서글하며 시원스레 웃기 좋아하는 K군으로부터 오랫만에 전화가 왔다. 언젠가 편한 시간이 나면 집에서 저녁을 꼭 대접하고 싶단다.
너무나 기분 좋은 초대에 망설임 없이 곧 시간을 잡고 며칠 후에 그의 집에 갔다. 19년 전에 만났던 그가 11년 전에 출감하여 얼마 전 결혼을 해 아들, 딸 낳고 예쁜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그의 집은 그의 성실한 삶을 대변해 주듯 3층 콘도를 아주 예쁘고 모던하게 꾸며놓고 잘 살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기뻐하는 초대는 바로 이러한 초대이다. 절망과 아픔의 기간에 함께 해주었던 그들이 그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 터널 밖의 밝은 빛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의 길과 몫을 그렇게 성실하게, 행복하게 사는 삶으로의 초대 말이다.그는 음식을 손수 준비하면서도 간간이 말로 나를 접대하며 지난 이야기를 마치 먼 옛날 이야기를 추억 속에 그리듯 전해주며, 나와 또 깊은 인연이 있는 다른 아이들도 곧 올거란다.그들 또한 출감 후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나의 좋은 이웃들이다.

식사시간이 되자 그들이 도착했다. 모두들 반가웠다. 참 오 랜 시간, 약 20년간을 알아온 사이라 마치 가족같은 그런 마음들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고 마냥 즐거웠다. 심지어는 수감 중의 생활까지도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이 된 것은 그들의 변화된 성실하고 아름다운 삶 때문인 것이다.물론 출감 후의 삶이 쉽기만 하고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 삶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큰 목소리로 연신 떠들며 음식을 준비하던 K군은 음식이 다 되었다며 스파게티를 소복히 담아오는데 검정 스파게티와 빨간 스파게티 두 가지를 샐러드와 함께 내놓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는 나는 “아! 이거구나. 프리즌(교도소) 스파게티!” 하며 얼른 검정 스파게티 그릇을 내 앞으로 잡아당겨 먹기 시작했다.


잊지 못할 오징어와 그 먹물로 만든 스파게티 맛! 그 맛을 나는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니, 전도사님, 이 스파게티 먹어 보셨어요” 하며 웃음이 자지러진다. 면회 갈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먹는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곧잘 해주곤 했는데 그 중 한 재소자가 그 이야기를 하기에 “오징어 먹물로?” 하며 내가 신기해 하니까 그 맛이 기가 막히다며 자신이 출감하면 해주겠단다. 그리곤 출감한 후 얼마 안되어 자신의 집에 초대해 그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 맛이 내 입맛에는 딱이었다.
우리는 맛있게 먹으며 때로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때로는 아직도 수감중인 그들이 아는 재소자의 억울하고 딱한 이야기를 분노 섞인 소리와 낮은 한숨으로 섞어가며 그렇게 이야기하며 11시를 훨씬 넘기고도 일어서지를 못하는데 음식을 대접한 K군이 느닷없는 고백을 했다.

“사실 전도사님을 겸사겸사 모셨다”며 자신이 수감 중에 있을 때 부끄러운 일(면회갔던 다른 그룹의 사람에게 거짓으로 이야기해 돈을 얻어 썼던 일)을 했던 것을 고백하며 그 일이 계속 자신을 괴롭혔다고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다른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보세요, 얘가 이렇게 사기꾼이라니까요” 하며 놀리며 웃는다. 그런 놀림에 씨익 웃으면서도 그는 사뭇 진지하다.결국 12시가 다 되어 일어나기 싫은 마음으로 나만 먼저 집을 나오는데 그가 따라 나오며 차 안에다 던져주듯이 다른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봉투를 내민다. 20년간 그들에게 주어만 보았지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너무나 당황해 하는 나를 기어이 이기고 나의 시동을 재촉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는 집으로 핸들을 꺾었다.

운전하며 돌아오는 내내 내 삶과 내 가슴 속에 가을의 캄캄한 하늘 속을 비집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하늘의 은총과 생명의 감격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으로 행복해 하는 나를 본다.삶은 감격이고 감동인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하는 이 밤이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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