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형사사건과 유능한 변호사

2008-11-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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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형사사건에 휘말리면 누구나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유능한 변호사를 찾는 일이다. 형사법원에 오래 일하는 경험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참고해야 할 기초적인 상식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미국의 형사법 제도에 대한 기초상식이다.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이곳에서 운용되고 있는 ‘유죄 인정 형량협상(Plea Bargain)’ 제도이다. 이곳에서는 형사사건의 거의 대다수가 변호사와 검찰 사이의 협상에서 어느 정도의 형량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합의된 유죄를 인정하는 협상으로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내가 맡아온 한인들의 사건이 연간 1,000건 정도 되는데 이 중 판사나 배심원의 결정으로 재판을 받는 소위 공판(trial)까지 간 사건의 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에 속한다.이렇게 거의 모든 사건이 이런 협상으로 끝이 난다면 우리가 찾는 유능한 변호사는 결국 이런
협상에 유능한 변호사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협상을 잘 할 수 있는 변호사는 어떤 여건을 갖춘 사람일까 한 번 생각해 보자.


첫째는 뭐니뭐니 해도 법과 절차에 관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방법원에서 취급하는 사건 정도라면 대단한 고도의 법률지식이 요구되는 그런 사건이 아니므로 법률지식의 고하를 가지고 변호사를 따질 일은 별로 없다.뭐니뭐니 해도 협상은 협상이니까 일반 사업에서처럼 고도의 협상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골라야 된다.변호사 중에는 특히 협상에 아주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변호사들을 가끔 보게 된다. 이들의 특
징은 우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고 또 검찰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사건이 맡겨진 법원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지역 변호사가 유리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름난 명 변호사라도 이곳 검찰과 서로 생소한 변호사라면 협상하는 자리에서 서먹한 상대일 수 밖에 없어 결코 적절한 변호사라 할 수 없다.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당사자와 충분히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인들이라면 한국어를 하는 변호사이거나 훌륭한 한국인 보조원을 두고 있어서 상담하는데 지장이 없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협상과정에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변호사에게 충분히 의사 전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변호사 중에 충분한 경험과 유능한 협상 능력을 갖춘 훌륭한 이 지역 변호사들이 있다. 이런 훌륭한 변호사는 이 지역 변호사로서 오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검찰과의 인간관계도 좋을 뿐 아니라 이 분야에 전문인이기 때문에 그 때 그 때의 검찰이나 법원의 현행 관행을 알고 있어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걸려드는 음주운전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경찰에 체포될 당시 혈중 알콜 농도 테스트에서 0.009%가 나왔다고 하자.

법에 정해진 대로라면 경형사범(輕刑事犯-Misdemeanor)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변호사의 협상에 따라 이보다 낮은 도로교통 규칙 위반급(Violation)으로 하향 조정되어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드물게는 이보다 더 유리한 일반 위반에 해당하는 풍기문란 즉 Disorderly Conduct라는 죄목으로 끝을 내는 운 있는 사건도 목격하였다. 이런 경우는 탁월한 변호사의 협상 수완에서 온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형사사건의 경험이 적거나 형사법원의 절차 조차 잘 알지 못하는 변호사를 피해야 된다는 점이다. 형사사건의 경험이 거의 없는 한 변호인이 매춘혐의로 체포된 사건을 맡아 처벌이 없다는 것에만 유의하고 매춘죄에 유죄를 시인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이 사람이 같은 혐의로 두번째 체포되었을 때에는 매춘이라는 전과 때문에 이민국의 추방조치
에 보내진 일이 있었다. 사건을 맡은 경험 없는 변호사가 매춘죄를 인정하지 않고 끝낼 수 있었던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 사람의 신세를 망쳐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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